프레디 머큐리를 처음 만난 건 ‘책받침’이었다. 그 시절 우리의 우상들은 책받침에 도배되어 있었다. 국내에 아이돌이 아직 등장하기 전이던 그 시절에 '레이프 가렛'과 '숀 캐시디'에 소녀들은 열광했었고, 그들의 얼굴은 학교 앞 문구점에 이른바 '굿즈' 같은 책받침 등으로 걸려 있었다.

그렇게 외국의 아이돌들이 도배한 사이에 이질적인 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프레디 머큐리. '퀸'의 열성 팬이었던 친구의 말에 따르면 프레디 머큐리가 이끄는 퀸은 미국의 아이돌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뮤지션이라는 것이다. 포스 넘치는 태도로 마이크를 들고 관중을 내려 보는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은 그렇게 책받침을 통해, 열성적인 한 소녀 팬을 통해 각인되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들이 주된 음악적 통로인 '라디오'를 통해 만나는 퀸의 음악은 그저 ‘one of them’, 여러 좋은 음악 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맞이한 프레디의 죽음. 많은 아티스트들을 소비하는 방식이 늘 그러했듯, 그의 음악보다는 그의 병명이 우리를 더 솔깃하게 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느덧 퀸은 예능과 스포츠 등 다양한 미디어의 배경음악으로 친숙한 존재가 되어갔다.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팬이 아니었던 많은 이들에게 퀸은 그렇게 몇십 년의 세월동안 조금씩 스며들었다. 그리고 2018년 가을,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했다. 두 말 않고 달려갔다. 1970년대 그들이 활동하던 시기부터 지금 2018년까지 수십 년의 세월을 두고 내 귀에, 내 머릿속에, 내 기억에 저장된 퀸이 나를 그곳으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비로소 나는 제대로, 프레디 머큐리와 퀸을 만났다.

보헤미안 프레디 머큐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이미지

그저 영국의 록 밴드였기에, 당연히 영국인이라(?) 생각했던 프레디 머큐리. 하지만 영화 속에서 만난 프레디는 퀸의 무대를 장악한 카리스마 프레디가 아니라 비행기 수화물을 나르는 파로크 불사라(라미 말렉 분)였다.

8세기 경 무슬림에게 쫓겨 인도로 망명한 조로아스터 교를 믿는 페르시아인 집안, 영국령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공무원을 하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에 의해 인도 뭄바이에서 보낸 10년, 다시 1964년 벌어진 아랍인과 인도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운동으로 인한 영국 이주, 1969년 대학 졸업 무렵에야 얻은 영국 시민권. 이 장황한 프레디와 그의 가족의 여정은 그 자체로 '보헤미안'이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에, 메리 오스틴(루시 보인턴 분)과 결혼 약속을 했으면서도 또 다른 성적 정체성으로 연인을 떠나보내고, 혼돈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또 다른 프레디 머큐리의 '보헤미안'적 특성을 얹으며 폴, 그리고 짐 허튼에 이르기까지 방황하던 그의 사생활을 통해 프레디 머큐리의 삶에 방점을 찍는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이미지

팀 스타펠이 탈퇴한 스마일 밴드. 그 밴드의 보컬로 자신을 자신만만하게 추천한 프레디는 변경된 보컬, 거기에 이방인의 외모를 지닌 그에게 호감을 보이지 않는 클럽 관객들을 4옥타브를 자유롭게 오가는 가창력에 화려한 무대 매너로 대번에 사로잡는다. 영국에 살지만 자신의 뿌리를 소중하게 지키고 싶었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이름도 성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택했듯 자신만의 특성을 가장 잘 살려 무대를 빛낸 프레디. 그때 이후로 그는 거침없었다. 존 디콘을 베이시스트로 영입한 스마일 밴드는 1973년 앨범 발매와 함께 퀸이 되었고,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동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책받침에서 각인된, 남성적이고 교주와 흡사했던 프레디 머큐리를 기억하고 있는 글쓴이에게 라미 말렉이 분한 프레디 머큐리는 처음엔 '희화화'된 듯이 보였다.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를 흉내 낸 게 아니라, 연기했다는 그의 말처럼 그 왜소하고 심하게 툭 튀어나온 치아 분장을 한 라미 말렉의 연기를 통해, 행운인 재능과 결코 행복하다 할 수 없는 프레디 머큐리의 삶의 아이러니한 비애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영국인이 아니면서 영국인으로 살아야 하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헷갈리는, 그리고 수만 관중이 환호하는 무대를 내려오면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감당할 길이 없는 한 사람의 고독, 무대에선 교주 같았지만 마치 악마와 거래를 한 듯 무대 아래에서는 자신을 소진시켜 버리고 마는.

프레디 머큐리만이 아닌, 밴드 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이미지

프레디 머큐리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고독'에 방점이 찍힌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다른 퀸 멤버들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물론, 퀸이라는 밴드 자체가 프레디라는 압도적인 스타에 근거한 그룹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18세기의 나무로 만든 수제 기타를 피크대신 동전으로 그만이 가능한 연주는 물론, 프레디와 함께 작사, 작곡을 했던 브라이언 메이(귈림 리 분)의 존재감이라든가, 영화 속에서는 그의 '갈릴레오'하는 고음만이 소개되었을 뿐이지만 일찍이 15살부터 드럼 치는 보컬로 활동했던 로저 테일러(벤 하디 분), 그리고 2명의 베이시스트를 갈아 치우고 나서야 비로소 ‘퀸’다운 베이시스트로 낙점된 존 디콘(에이단 길렌 분)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불친절했다.

하지만 개별 캐릭터에 대한 불성실한 설명 대신, 왜 프레디 머큐리가 아닌 ‘밴드 퀸’이어야 했는가에 대해 영화는 명쾌하게 정의 내린다. 눈 밝게 프레디를 밴드의 보컬로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오페라 형식'을 과감하게 도입하려는 프레디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퀸다운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호응함은 물론, 자유분방한 사생활로 밴드가 정체되었을 때 관객과 호흡하는 신선한 시도로 돌파구를 마련하며, 불협화음이었으나 그게 결국은 외골수 프레디의 안전장치이자 보완책이었다는 결론, 거기에 병에 걸린 프레디를 기꺼이 품어 안는 동지애까지 왜 프레디가 아닌 ‘밴드 퀸’이었는가를 영화는 정의 내린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이미지

또한 연기로 커버한 프레디와 달리, 실제 브라이언인지 로저인지 존인지 헷갈릴 만큼 싱크로율 100%의 캐스팅에, 캐스팅 못지않은 브라이언의 독주나 맥주를 튀기며 연주하는 로저, 그리고 결코 화려하지는 않지만 베이스다웠던 존까지 배우들의 연주 장면은 퀸 멤버의 존재감을 구구절절 설명 없이도 드러내 보인다.

무엇보다 락에서부터 디스코, 그리고 술이 질펀하게 튕겨나가는 무대에서 선정적 뮤직 비디오까지, 몸에 딱 달라붙는 발레 의상부터 여장 등 음악적 장르와 엔터테이너적인 측면에서 선구적이며 독보적인 면에서만은 더할 나위 없이 호흡이 좋았던 그룹 퀸의 눈 밝은 면면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세대가 달라 퀸이 낯설었던 젊은 친구는 물론 오래도록 퀸을 알았지만 정작 퀸을 겉핥기식으로 알았던 글쓴이와 함께 퀸에, 퀸의 음악에 공감하고 감동했다. 세기의 밴드 퀸, 그거면 되지 않을까. 세대를 막론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퀸은 ‘현재형’으로 다가온다는 그 존재감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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