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배우 조덕제 강제추행 사건에서 언론도 가해자라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언론이 가해자에게 유리한 허위 보도를 내고, 영화 메이킹 영상을 공개해 알려지지 않았던 피해자를 특정시켰기 때문이다.

앞서 대법원은 9월 13일 영화 촬영 중 상대 배우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우 조덕제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을 확정했다. 영화촬영 중 성추행을 인정한 첫 사례였다. 현재 조덕제 씨는 유튜브 개인방송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소장, 안지희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 배우 이재용 (사진=미디어스)

이에 대해 “언론도 이 사건의 가해자다”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소장은 6일 <더 나은 영화현장을 위해 영화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자회견에서 “영화계 내 성폭력과 관련된 이슈를 대하면서 가장 대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 언론이었다”고 지적했다.

윤정주 소장은 “언론 매체가 중심이 되어 가해자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피해자를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면서 “영화계 내 성폭력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 간 ‘진실 공방’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강조했다.

실제 다수 언론은 조덕제 강제추행 사건에 가해자 역할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디스패치는 2017년 10월 < “디렉션 : 미친놈처럼”…조덕제 사건, 메이킹 영상 입수> 보도에서 강제추행이 있었던 영화 '사랑은 없다'의 메이킹 영상 일부를 공개했다. 해당 영상은 조덕제 씨가 디스패치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는 선정적이었다. 영화에서 조덕제 씨가 반민정 씨를 폭행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보도에 담았다. 반민정 씨를 B씨라고 지칭했지만, 사실상 피해자를 특정하는 보도였다. 전체 영상의 일부만 발취한 ‘짜깁기’라는 논란도 일었다. 반민정 씨 측은 디스패치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섰다.

▲디스패치 2017년 10월자 < “디렉션 : 미친놈처럼”…조덕제 사건, 메이킹 영상 입수> 보도 (사진=네이버 뉴스 화면 캡쳐)
▲코리아데일리의 사과문 (사진=코리아데일리 홈페이지 캡쳐)

코리아데일리는 조작 기사를 통해 반민정 씨를 ‘보험금 갈취녀’로 매도했다. 코리아데일리는 2016년 7월 8일 <[단독]백종원 상대로 돈 갈취한 미모의 여자 톱스타> 보도를 통해 반민정 씨가 백종원 씨의 식당을 상대로 돈을 갈취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해당 기사에 나온 모든 내용과 허위였다.

허위 바이라인 논란도 있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강도현 기자’는 실체가 없는 인물이었다. 코리아데일리의 편집국장이었던 이재포 씨와 사장 A씨는 서로에게 책임을 미뤘다. 이재포 씨의 매니저 출신인 B기자는 반민정 씨에 대한 허위기사를 작성했다.

이에 서울남부지법 제1 형사항소부는 지난달 4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이재포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B기자 에게는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성범죄 재판을 받는 지인(조덕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피해자의 과거 행적을 조사해 허위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코리아데일리는 지난달 4일 자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폐업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윤정주 소장은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 되었다”면서 “피해자는 가해자뿐만 아니라 언론, 그리고 그 언론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싸워야 했다”고 지적했다. 윤정주 소장은 “이제는 언론이 변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영화계 내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어왔던 것들이 미투라는 거대한 물결이 된 이유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정주 소장은 “언론은 지금까지 피해자에게 얼마나,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묻고 검증하려 했다”면서 “이제는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윤정주 소장은 “이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찾아가 물어야 한다”면서 “가해자의 말을 검증하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 때문에 개선되지 않는지를 보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배우A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더 나은 영화현장을 위해 영화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안지희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에도 가해자와 측근은 유튜브, 페이스북을 통해 ‘무고죄를 퇴치하자’면서 하나의 운동으로 세력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지희 변호사는 “특히 언론은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가해자를 비난하기보다 ‘끝나지 않은 진실 공방’으로 몰아갔다”면서 “2차 가해로 인하여 피해자를 비난하는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배우 이재용 씨는 “가해자는 언론을 동원해서 피해자를 삶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것 같다”면서 “언론은 사실관계의 전달 보다는 사건이 지니고 있는 관능적인 부분의 보도를 재생산했다”고 지적했다. 이재용씨는 “언론·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사회적 잣대가 있어야 한다”면서 “언론이 선정성에 기름을 끼얹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6일 기자회견 후 자극적 제목의 언론 보도 (사진=네이버 뉴스 화면 캡쳐)

한편 기자회견 소식을 전한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를 내놨다. 스포츠투데이는 <배우 반민정, 눈물 흘리는 남배우 성폭력 피해자>란 사진기사를 출고했다.

이번 ‘더 나은 영화현장을 위해 영화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자회견은 남배우A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6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에서 열렸다. 안지희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안병호 전국영화산업협동조합 위원장·안정윤 찍는페미 활동가·남순아 한국독립영화협회 성평등위원회 위원장·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소장·배우 반민정·배우 이재용 등이 발언자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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