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조선일보 노동조합이 대의원 회의를 열고 박준동 노조위원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 진행 방식을 결정하기로 했다. 박 위원장이 탈북민 출신 조선일보 기자에 대한 통일부의 '취재 불허' 사태에 대해 대다수의 조합원 의견과 달리 사측도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는 노보기사를 게재했다는 이유에서다.

조선일보 노조 대의원 "위원장 개인 의견 쓰는 게 노보인가"

19일 발행된 조선노보에 따르면 조선일보 노조는 지난 17일 긴급 대의원 회의를 열어 오는 22일 박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 진행 여부에 대해 조합원 총의를 묻기로 결의했다.

앞서 16일 발행된 조선노보에는 '통일부 취재 불허'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언론자유침해를 비판하고, 조선일보 역시 민감한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신중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담긴 글이 실렸다. 이에 해당 노보에 대한 조선일보 정치부 노조원들이 반발에 나섰고, 정치부 외 현재까지 사회부, 산업부, 편집부 등 10개 부서 126명의 조합원들이 정치부 노조원 입장에 지지 의사를 밝힌 상태다. 조선일보 노조 조합원 수는 207명이다.

이번 조선노보는 17일 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의원들과 사무국장이 논의해 발행된 것이다. 대의원들은 회의에서 ▲16일 노보의 제작 경위를 밝힐 것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편집회의 같은 절차를 밟을 것 ▲조합원 반론권을 보장하는 절차를 확립할 것을 박 위원장에게 요구했다. 박 위원장이 조합원 총의를 물어야 하는 사안에 대해 개인 의견을 노보 기사로 게재한 것은 '노보 사유화' 라는 게 대의원들의 입장이다.

논란이 된 10월 16일자 '조선노보' 갈무리

또 대의원들은 절차가 마련될 때까지 박 위원장이 노보 제작에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요구했다. 이 같은 요구에 박 위원장은 "노보를 안 만드는 건 노조를 안 하는 것과 같다. 손 떼라는 건 탄핵하겠다는 얘기다. 불만이 많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합원이 많다면 탄핵을 하든지 불신임 투표를 해서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의원들은 "위원장이 제안한 불신임 투표 진행 여부에 대해 조합원들의 총의를 묻기로 결의했다"며 오는 22일 대의원 회의를 열고 의견 수렴 방식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의원 회의에서 결정된 방식으로 의견이 모아졌을 때 조합원 4분의1 이상이 투표에 찬성하는 것으로 확인되면 노조 규약에 따라 불신임 투표가 진행되게 된다. 대의원들과 박 위원장은 투표 기간 동안엔 노보를 제작할 수 없다는 데 합의했다.

여기에 더해 조선일보 노조 정치부 조합원들은 노보를 통해 '통일부 취재 불허' 사태에 대한 한국기자협회의 규탄 성명이 기자협회 조선일보 지회장이기도 한 박 위원장의 반대로 지연됐다는 의혹을 추가로 제기했다.

정치부 조합원 일동은 '박준동 위원장의 해명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노보 기사에서 "조합원들 사이에 믿기 힘든 소문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며 "통일부가 지난 15일 본지 김명성 조합원을 남북고위급회담 공동취재단에서 배제 한 것과 관련, 한국기자협회가 사건 발생 사흘 만인 지난 18일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이처럼 지연된 것이 기자협회 조선일보 지회장의 반대 때문이었다는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이 같은 정황은 협회의 입장 발표 가 늦어지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본지 조합원들이 지난 16~17일 협회 측에 문의하는 과정에서 파악됐다"며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협회의 성명 발표까지 방해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묵과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부의 언론자유 침해와 탈북 민 차별행위를 감싸는 것도 모자라 이런 정부를 비판하는 것까지 막으려는 저의가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박준동 위원장 "'기자협회 성명 지연시켰다', 사실 아냐… '통일부 두둔' 해석은 왜곡"

이번 노보 제작에 참여할 수 없었던 박 위원장은 전 사원 메일로 노보 내용에 대한 반론을 담아 전송했다.

우선 박 위원장은 정치부 조합원들이 제기한 '기자협회 성명' 의혹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박 위원장은 "기자협회에서 성명서 발표 관련 전화가 온 것은 노보가 나오기 전이 아닌 노보가 나오고도 하루가 지난 17일 오후 2시경이다. 그러므로 제가 15일~16일에 선뜻 동의해 주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 때는 노보에 성명서 발표 여부를 고민했다가 논평 형식의 글을 게재하는 과정이었고 기자협회 성명서 발표 논의 자체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 박 위원장의 해명이다.

또 박 위원장은 '노보가 통일부의 조치를 두둔하는 내용'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노보에서 분명히 통일부의 조치를 비판했지 두둔하지 않았다. 본사와 기자단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 뒷부분에 있다고 통일부를 두둔했다는 해석은 왜곡"이라고 일축했다.

박 위원장은 ‘성명 발표를 방해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묵과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부의 언론자유 침해와 탈북민 차별행위를 감싸는 것도 모자라 이런 정부를 비판하는 것까지 막으려는 저의가 무엇인가’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라면 저널리즘'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정을 사실로 둔갑시켜 비방하는 방식으로 언론의 금기"라고 지적했다.

'노보를 사유화 했다'는 대의원 입장에 대해서도 박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위임한 편집권을 바탕으로 노조위원장은 책임을 지고 양심에 따라 노보를 제작한다"고 해명했다. 박 위원장은 "노보는 공론의 장이다. 조합원들이 들어볼만한 가치 있는 의견이라면 노조 집행부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글을 기고하고 반론할 수 있다. 위원장이 바뀌더라도 이 원칙이 계속 지켜지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다수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사주의 심기를 거스른다고 해서 노보에 글을 자유롭게 게재할 수 없다면 공론은 형성될 수 없다"며 "성명서라면 다수의 의견일치가 전제돼야 하나 노보가 성명서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측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을 바라보고 쓰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박 위원장은 "언론은 취재원에게 영향을 주거나 영향을 받아선 안 되는 관찰자이다. ‘왜 팔이 안으로 굽지 않느냐’는 건데 우리는 이성의 영역에서 일하는 기자들"이라며 "취재원과 특별한 관계일 때 직접 접촉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게 노보의 취지였다. 그 원칙이 언론자유 침해로 이용되지 않도록 정부의 강제가 아닌 언론이 스스로 판단할 일이라는 것도 명시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