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유시민 작가의 하차 이후 그 자리를 대신한 정의당 노회찬 의원에 대한 의구심은 있었지만 그나마 첫 회는 그럭저럭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유시민 작가 없는 <썰전>은 금세 표가 났다.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썰전>의 구성과 진행이 일반 종편 시사 프로그램의 색깔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종편답지 않았던 <썰전>의 색깔이 유시민 작가의 하차로 퇴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썰전>은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 논란’ ‘보수의 길을 묻다 2탄’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남·북·러 경제협력 전망’ 등 네 가지 이슈로 구성됐다. 지방선거 후보였던 박종진, 이준석 두 사람을 불러 바른미래당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은 기왕에 하던 기획코너였으니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든 큰 의미는 없다.

JTBC 시사교양프로그램 <썰전>

문제는 현재 최대 이슈인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 논란’을 대단히 성의 없이 다뤘다는 인상을 남겼다는 데 있다. <썰전>이 주창하는 거친 ‘뉴스 뒤의 이야기’도 없었고, 기존 보도를 요약하는 수준으로 건성건성 지나가는 분위기였다. 마치 실행되지 않았고, 이제 수사가 시작되지 별일 아니라는 의미였는지 모를 일이다. <썰전>에 기대했던 뼈를 때리는 비평은 없었다.

<썰전>에서 기무사 문제를 다룰 것을 예상했고, 기존 보도 이상의 내용을 기대했던 시청자들로서는 많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결과였다. <뉴스룸>이 아닌 <썰전>을 보는 이유는 보도 이상의 사실과 해석을 알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한 발 더 들어가는’ 뉴스가 유행인 요즘 <썰전>이 기존 보도를 종합하는 수준으로 이슈를 다룬다면 실망일 수밖에는 없다.

JTBC 시사교양프로그램 <썰전>

그러면서 과연 유시민 작가가 하차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이처럼 싱겁게 다뤘을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기존 시청자라면 당연한 반응이다. 우리는 이미 5.16과 12.12 두 번의 쿠데타 경험을 갖고 있으며, 두 번의 군사 쿠데타가 가져온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와 불행한 역사는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일이다.

실행되지 않았다고 해서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것이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인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뿐인가. 기무사는 세월호 참사에도 개입해 선체 인양을 반대하고, 희생자들을 그대로 수장하자는 계획도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정도라면 그동안 <썰전>이 보였던, 적어도 유시민 작가가 있었던 <썰전>이라면 대단히 혹독하게 비판했을 것이다.

전체적 내용으로 봐서는 편집된 내용도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근본적으로 이번 주 <썰전>은 기무사 계엄령 문건 문제를 깊이 다룰 의도나 성의를 갖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JTBC 시사교양프로그램 <썰전>

마지막에 다룬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대해서는 진짜 이슈는 젖혀둔 채 낡은 친문패권 논리를 다시 끄집어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갖고 있는 전당대회 이슈는 친문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작년 정발위에서 좌절된 당원 직접민주주의가 화두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친문이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런 것을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관심을 갖거나 중요하게 언급할 이유는 별로 없다. <썰전>이 더불어민주당 이슈에 대해서는 제대로 접근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썰전>의 미래는 우클릭되거나, 적어도 민주당이 소외되는 종편의 흔한 프로그램 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을 갖게 된다. 뉴스 이상의 이야기, 유시민 작가가 전해주던 시대정신이 담긴 직설은 노르가즘 노회찬 의원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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