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놓고 사회 각계에서 많은 논의들이 오가고 있다. 이같은 논의들의 공통 목표는 공영방송 이사회의 독립성 보장이다. 여·야 정치권 추천에 의해 구성돼 '정치적 후견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던 공영방송 이사회를 공영방송 정상화 흐름에 발맞춰 개선하자는 것이다. 오는 8월 KBS·MBC·EBS 등 공영방송 이사회 재편이 예고돼 있다.

다만 방법론적 차원에서 정부와 언론시민사회는 입장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관련 주무부처이자 공영방송 이사에 대한 추천·임명권을 가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 이효성)는 방송미래발전위원회를 출범, 이른바 '중립지대 이사 선임안'을 내놓은 상태다. 정치적 후견주의를 막기 위해 공영방송 이사회 정원의 3분의 1을 학술·직능·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로부터 추천받아 '중립지대' 이사로 구성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전국 241개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방송독립 시민행동'은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있어 공론화위원회 성격의 '시민검증단'을 설치·운용해 불법적인 정치권 추천을 원천 배제하고 이사 후보들이 시민들에게 검증 받는 안을 방통위에 제안했다. 앞서 방송계 일각에서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6월 29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한국방송학회는 방송통신위원회 후원으로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혁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 공영방송 모델의 모범으로 꼽히는 영국 BBC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개혁 방안을 모색했다.(미디어스)

이런 가운데 29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한국방송학회는 방통위 후원으로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혁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 공영방송 모델의 모범으로 꼽히는 영국 BBC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개혁 방안을 모색했다.

발제를 맡은 홍남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박사는 최근 BBC의 지배구조 변화가 한국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에 던지는 시사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2016년 칙허장 개정에 따라 BBC를 경영·규제해왔던 최고기구 'BBC 트러스트'가 폐지됐다. 이에 따라 BBC는 영국 방송통신 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과 내부 경영·편집을 책임지는 BBC 이사회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 경영과 규제가 분리된 일종의 거버넌스 개혁인 셈이다.

홍 박사는 이 과정에서 BBC 거버넌스의 투명성과 공개성, 다양성과 공적 책임이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칙허장 개정으로 BBC는 수신료 납부자를 대상으로 직원·출연자들의 임금, 운영 사항, 사업 활동, 이사회 운영 등을 공개한다. 또한 BBC는 이사회 구성원 수를 늘리고 지역,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 대표성을 높였다. 그러면서도 이전과 달리 오프콤의 외부 규제를 받게 됨으로써 방송의 공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변모했다는 게 홍 박사의 설명이다.

특히 한국 공영방송 현안인 이사회 구성과 관련해 홍 박사는 "BBC의 신규 이사회 출범이 여전히 백인 엘리트 남성 중심의 편향이라고 비판받기는 하지만 지역, 성별, 소수자 할당을 구현해 내고 전문성과 역량의 요소 또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참고할 만 하다"며 "또한 이사회 구성뿐 아니라 이사회 구성원들의 공적 책임 의식 강화와 이사회 운영 절차의 투명성, 개방성의 강조는 한국 사회에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발제와 관련해 토론 패널 석에서는 BBC의 새 지배구조, 새로 선임될 한국 공영방송 이사의 성격과 선임 방식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칙허장 개정에 따른 BBC의 새 지배구조가 영국 보수당의 겁박에 가까운 압박에 의해 탄생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이로 인해 BBC의 강점이었던 '전문직 주의'가 훼손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BBC트러스트를 폐지해야한다는 보고서를 쓴 데이비드 클레멘티는 현재 BBC 이사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데이비드 클레멘티 이사장은 금융인 출신이다. 이 교수는 "BBC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전문직 주의였는데 그게 허물어지는 역사적 배경을 보인다"며 "배워야 할 대상이 정치적으로 훼손되고 있기 때문에 난감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정치적 후견주의가 조건 변수"라며 "정치적 후견주의 문제를 볼 때 이해해야 할 것은 '정당이 얼마나 이사들을 파견하느냐'로 관점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다. 유럽식 후견주의는 다층적으로 (정치적 후견주의에)물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독일 공영방송 제데프(ZDF)와 BBC 이사회 구성 상황을 덧붙였다.

이 교수는 제데프의 이사회격인 방송평의회의 경우 당정, 노사, 시민단체들로 구성되는데 직능단체 성격의 시민단체가 들어올 경우 공정성을 훼손하는 아젠다 들어올 수 있고, BBC 이사회의 경우도 일부 상업계 인사들이 들어와 있어 최근 BBC의 전략이 일반 상업방송사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후견주의'란 정당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의해서도 이뤄질 수 있는 다층적인 개념으로 "공영방송 이사회를 시민단체의 또 다른 나눠먹기 판으로 만드는 것은 정치인에게 맡기는 것보다 나쁠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반면,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BBC의 새 지배구조에 대해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으며 한국 공영방송 이사 선임 방식에 있어 '방송독립 시민행동'이 제안한 시민참여 방식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또한 "시민의견이 시민단체의 의견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며 "정치권, 학계 등 전문가의 신뢰가 떨어진 만큼 견제를 담당할 유일한 존재는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미 BBC는 공정성과 관련해 더 이상 외부에서 주문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위상과 권위를 확립해놓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경영적 측면을 강조하는게 아닌가라는 선해를 하게 된다"고 달리 해석했다. BBC는 공영방송의 공정성 확립에 있어 한국의 공영방송과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으로, 전제가 다르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한국 공영방송 이사회의 역할은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공적기능의 방송을 잘 하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며 이미 정치권, 학계, 언론계 등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이사 선임 과정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기존과 다른 절차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방송독립 시민행동'이 제안한 이사선임 시민위원단에 찬성한다"며 "원전 공론화위원회, KBS사장추천위원회 등의 사례에서 시민들은 충분히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뉴스통신진흥회 이사로서 연합뉴스 사장 공모 과정에 시민참관단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또한 김 교수는 "BBC 이사회 구성을 보면 14명 중 여성이 4명이고 장애인, 흑인도 있다. 구성 다양성은 좀 배워야 한다. 지역할당과 여성할당이 필요하다"면서 "이사회에 대한 관리는 더 중요하다. BBC는 온갖 것이 다 공개돼 있다. 공직자 수준이다. '공영방송 이사'는 '자리'가 아니라 '일'이다. 이사들의 활동과 이사 개인에 대한 정보를 공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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