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이슬람 사람들은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애 낳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성범죄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얼마 전 청와대 국민 청원에 등록됐다가 삭제된 난민 반대 의견의 일부다. 여초 커뮤니티와 일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예멘 난민에 대한 ‘강간 공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강간 공포’의 요지는 예멘 난민들이 할례, 명예살인 등 극심한 여성 혐오적인 이슬람 문화권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성폭력을 저지를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난민 및 이민자들의 집단 성범죄 사건인 독일의 ‘쾰른 사건’이나 영국의 ‘로더럼 사건’ 등을 들기도 한다.

예멘 수도 사나에서 식량배급을 기다리는 예멘 어린이들(연합뉴스)

이러한 ‘강간 공포’는 여성들이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뼛속 깊이 새겨 온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강간 공포’는 유용한 감각이다. 밤길을 걸을 때 낯선 남성을 경계할 때처럼 강간 위험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포에는 에너지가 많이 들고 활동을 위축시킨다. 무엇보다 문제 대면을 어렵게 만들어 해결 의지를 무력화한다. 그래서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고 실질적인 대처를 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공포를 분리해야 한다. 예멘 난민에 대한 ‘강간 공포’도 마찬가지다.

우선 지금 제주도에 체류 중인 예멘 남성들은 남성성보다 ‘난민’이라는 지위가 절대적이다. 생존권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나머지 안전권, 건강권, 노동권 등 각종 기본권에 있어서 처참한 수준인 것은 물론이다. 이 처지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더라도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여성 일반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 있다면, 예멘 난민은 그 운동장의 벼랑 끝에 있는 것이다. 난민 지위에 치명적인 강간 모의가 터무니없는 억측인 이유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난민 인정률은 2015년 기준 4%(세계 평균 37%)로 부끄러운 수준이다. 난민을 제대로 받아 보지도 않은 나라인 데다 60만 제주도민의 1000분의 1도 되지 않는 규모의 난민을 두고 운운하는 ‘강간 공포’는 합리적인 공포라기보다 제노포비아(Xenophobia)의 혐의가 짙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여성 혐오 이미지도 과장돼 있다. 여성 혐오는 이슬람교뿐 아니라 기독교나 불교, 유교 등 어느 종교나 문화권이라도 수치스럽게 달고 있는 부위다. 그것이 이슬람에서는 여성 할례나 명예살인으로, 기독교에서는 아동 성폭력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원정 성매매와 국제결혼 등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느 문화권 내의 여성 혐오가 더 고질적이고 광범위하고 문제적인지는 몇몇 사례로 성급히 판단하기 어렵다. 판단할 수 있더라도 문화권과 그 문화권 속 개인은 구별해야 하며, 무엇보다 여성 혐오 문화를 구실로 추방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변명이다.

여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예멘 난민들의 강간 모의 주장 매뉴얼 게시물

강간의 근본 원인은 성욕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다. 강간을 이슬람교나 남성 자체의 문제로 보는 것이 피상적인 이유다. 독일의 쾰른 사건, 영국의 로더럼 사건도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낀 집단이 주류 사회의 하층계급 여성들을 상대로 감행한 ‘복수’ 성격에 가깝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도 비슷한 사례였다. 이러한 사례는 일부 난민이나 이민자를 추방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환경오염처럼 강간 문화는 일부 국가나 집단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상호작용한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할 것은 몇몇 난민을 눈앞에서 사라지게 함으로써 강간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이번 제주도 예멘 난민에 대한 ‘강간 공포’는 오히려 그동안 남의 집 불구경 보듯 다뤘던 이슬람의 명예살인, 할례와 같은 여성 혐오 문화가 ‘우리의 문제’임을 환기한다. 동시에 현재 우리의 페미니즘이 민족주의에 갇혀 있었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다문화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흐름이다. 무슬림은 전 세계 인구의 25%를 차지한다. 이미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0만 명, 다문화 가정도 100곳 중 2곳에 이른다. 무조건적인 공포가 아니라 그 공포를 어떻게 실질적인 안전으로 바꾸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페미니즘이 ‘Not In My Human Rights’가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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