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 이효성)가 오는 7월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방송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시간 단축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고용노동부 정책 담당자는 방송 사업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탄력 근로제, 재량 근로제 등 유연 근로시간 제도를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파 방송4사 노사가 산별교섭을 진행 중인 가운데 방통위와 고용노동부의 이러한 안내가 사용자 측에 유연근로제를 언급할 수 있도록 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방통위는 19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고용노동부와 함께 소관 방송사업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시간 단축 등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방송사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노동시간 단축 설명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방통위는 이날 설명회에서 "고용노동부 정책 담당자가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방송 사업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재량 근로시간제 등 유연 근로시간 제도를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방통위는 이번 설명회가 지난 3월 20일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방송업 등 21개 업종이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방송분야의 노동시간 단축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개최되었다고 소개했다. 해당 근로기준법 개정은 오는 7월부터 근로자수 30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 적용된다. 이번 안이 근로자의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축소하는 안인 만큼 규모가 큰 주요 방송사들은 관련 법 적용을 앞두고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문제는 고용노동부 담당자가 이른바 '탄력근로제', '재량근로제' 등 근로기준법 개정의 본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는 유연 근로시간제를 방송 사업자에게 안내했다는 것이다. 방송사 노조측에서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유연근로제에 대한 우려를 일찍이 제기해왔다. 특히 재량근로제와 관련해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은 '절대수용불가' 입장을 피력해왔다.

최정기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19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설명회에 유연근로제가 안내된 것에 대해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잘라 말했다.

최 국장은 "재량근로는 도입하는 순간 법 개정 취지가 무력화되는 것이다. 저희는 여러차례 교섭지침과 방침으로 절대수용불가 입장을 냈다. 탄력근로제 역시 아주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운영해야할 부분"이라며 "심지어 고용노동부가 재량근로제도를 유연근로제 활용 방안으로 안내했다라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 국장은 "방통위와 고용노동부가 사용자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런데 이 적용 방법에 대해 재량근로를 안내했다는 것은 방송 사업자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엄중히 항의해야할 문제인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현재 지상파 방송4사(KBS·MBC·SBS·EBS) 노사는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른 제작환경 개선 논의를 포함해 산별 교섭을 진행 중에 있다. 방통위와 고용노동부의 유연근로제 안내가 해당 교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유경 언론노조 SBS본부 자문 노무사는 방통위와 고용노동부의 안내가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전시행정적 설명'이라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방송4사 노조가 재량근로제는 못받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밝혔고, 교섭도 재량근로제를 배제한 채 진행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 현실을 무시한 채 '이런게 있으니 참고하라'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전시행정적 설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재량 근로시간제는 근로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업무수행방법을 근로자의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재량 근로시간제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에는 신문, 방송업종이 포함돼 있다.

만약 방송사가 재량근로제를 실시한다고 가정하면, 노사가 PD업무에 대한 근로시간을 1일 9시간으로 서면 합의했을 때 실제 방송사의 PD가 매일 12시간씩 일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노사가 정한 9시간을 초과한 근로시간 3시간에 대해 해당 PD는 임금을 청구할 수 없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동안 특례업종에 포함돼 그나마 추가 근로에 대한 임금청구가 가능했던 방송업계가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을 토대로 재량근로제를 실시할 경우, 방송업계에서는 오히려 기존보다 근로조건의 후퇴가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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