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EBS 다큐프라임 <야수와 방주> 촬영 중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 박환성 PD의 유족 측이 EBS 임직원 2명을 형사 고소했다. 고 박환성 PD의 유족 측은 “업무 방해와 명예 훼손으로 EBS 임직원에 형사고소를 했다”며 “EBS는 고 박환성 PD에 대한 사과와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박환성 PD가 제기한 EBS의 불공정행위 진상규명을 촉구한다> 기자회견(미디어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2일 “EBS가 정부 제작지원금의 40%를 간접비로 떼어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고 박환성 PD의 민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EBS도 장해랑 사장이 취임한 후 고 박환성·김광일 PD의 사망 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EBS 협의체’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과 EBS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30일 방송회관에서 열렸다.

블루라이노픽쳐스·한국독립PD협회·언론개혁시민연대 주최로 열린 <고 박환성 PD가 제기한 EBS의 불공정행위 진상규명을 촉구한다> 기자회견엔 ▲한국독립PD협회 송호용 회장 ▲언론개혁시민연대 김동찬 사무처장 ▲블루라이노픽쳐스 박경준 대표 ▲법무법인 집현전 등이 참여했다.

고 박환성 PD는 지난해 ‘야수와 방주’를 찍기 위해 EBS에 제작비 2억 1000만 원을 신청했다. EBS는 1억 4000만 원만 지원해줬다. 제작비가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야수와 방주’가 RAPA의 ‘2017년 차세대 방송용 콘텐츠(UHD)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1억 2000만 원을 추가 지원받게 되었다. 이후 EBS는 박환성 PD에게 “RAPA와의 계약서에 지적 재산권을 방송사업자에 양도할 수 있다는 문구를 넣어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지원금의 40%도 간접비로 납부할 것을 요구했다. 박환성 PD가 순순히 응하지 않자 EBS는 계약 해지 사유에 들어간다는 식으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비의 정산이나 촬영 원본을 보내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박환성 PD는 제작지원금 납부 요구에 응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넣었다. 그 후 촬영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고 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시 박환성·김광일 PD는 운전기사를 고용하지 않고 직접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기사 ▶ 박환성·김광일 독립PD, 남아프리카서 촬영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

(한국독립PD협회)

이날 박경준 블루라이노픽쳐스 대표는 “저작권을 넘기는 계약을 하지 않고는 선택사항이 없었다”며 “EBS의 갑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EBS의 사과도 있어야 하지만 그에 앞서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블루라이노픽쳐스는 고 박환성 PD가 운영했던 1인 기획사다. 박경준 현 대표는 박환성 PD의 동생이다.

유족 측은 EBS 임직원 2명에 대해 ▲업무 방해와 ▲명예 훼손을 적용해 형사 고소장을 제출했다. 법무법인 집현전의 안미현 변호사는 “EBS는 정부산하기관에 받은 제작지원금의 귀속을 요구했고 박환성 PD가 거절하자 계약해지 사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며 “이후 지원금 반환에 응할 때까지 전방위적인 압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피고소인(EBS)의 행위로 제작에 차질을 가져왔고 정부지원금 반환을 결정했다”며 “박환성 PD의 사망 사고에 일부 기여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명예 훼손에 대해선 “EBS는 박환성 PD가 허위로 정부지원금을 신청했다는 식으로 말했다”며 “부정한 방법으로 지원금을 받았다고 묘사해 사회적 평가를 깎아내렸다”고 강조했다. 안 변호사는 “유족 측은은 해당 행위를 한 EBS 직원에게 사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고소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한경수 PD는 “박환성 PD는 자연 다큐멘터리의 대표적인 감독이었다”며 “훌륭한 커리어가 있는 감독에게 제작비 정산을 요구하고 촬영본 원본을 보내라고 하는 것은 모욕이다”고 말했다. 이어 “EBS는 자신들에게 관리·감독 권한이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며 “하지만 EBS가 그동안 독립 PD에게 그러한 요구를 해온 사실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문제의식이 없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집현전도 “EBS와 박환성 PD의 계약은 도급계약”이라며 “완성물을 주는 것으로 끝난다”고 말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EBS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법적인 문제가 있다”며 “업무방해죄 요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EBS 장해랑 사장이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앞서 EBS는 박환성 PD의 유족·언론개혁시민연대와 함께 ‘EBS 협의체’를 만들어 이 사건의 대책을 강구해 왔다. 송호용 회장은 “장해랑 사장이 선임된 후 협의체가 멈췄고 재개 요청을 드린 적 있다”며 “시스템에 의한 문제이지 두 임직원이 사과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잘못이라는 것은 전제하면서 임직원의 사과는 곤란하다는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용호 변호사는 “장해랑 사장으로선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직원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보였다”며 “인간적인 사과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고 박환성 PD가 제기한 EBS의 불공정행위 진상규명을 촉구한다> 기자회견(미디어스)

송호용 한국독립PD협회 회장은 “갑을관계에 따른 수직적 위계 관계에서 협의는 불가능하다”며 “이 같은 현실을 무시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수평적 관계를 전제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EBS와 박환성 PD 간의 계약서를 보면 실제 제작비보다 적은 예산, 저작권이 방송사에 귀속된다는 내용이 있다”며 “EBS의 약탈적 계약”이라고 비판했다.

송호용 회장은 “대표적 갑질이자 불공정행위”라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이것을 판단했는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외주제작 시스템에 대해 지적도 했다. 송호용 회장은 “이런 문제는 비단 박환성 PD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방송계 전체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은 (외주 제작사의)현실을 외면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인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송호용 회장은 “공정거래위원회와 문체부는 EBS의 약탈적 갑질에 대한 입장이 뭔지, 근절 대책은 뭔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공정거래위원회는 EBS의 저작권 귀속·제작비 40% 회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며 “그럼 박환성 PD가 강요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자기 혼자 착각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은 박환성 PD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며 “이런 결정은 누구도 수긍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향후 박환성 PD 유족 측과 한국독립PD협회·언론개혁시민연대는 EBS 임직원에 대한 형사고소와 함께 공정거래위원회 재심의 청구, 공개적인 문제 제기에 나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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