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제2의 최순실이라도 등장한 것처럼 야단법석이던 언론들이 서서히 드루킹 사건으로부터 발을 빼고 있다. 23일 저녁 각 언론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드루킹 사건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그렇지만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TV조선> 기자가 드루킹의 느릅나무 출판사에 일반인 모씨와 함께 침입해서 태블릿PC·USB를 들고 나온 사건이 알려진 것이다.

경찰은 일반인 모씨를 절도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일반인과 함께 들어간 <TV조선> 기자에 대해서는 소환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사건은 지난 18일 발생했다. 23일 사건이 알려지기 전까지 <TV조선>이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한 바는 없다.

TV조선기자,드루킹 출판사서 '태블릿PC·USB' 가져가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시민들은 경찰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일반인 모씨와 기자가 함께 들어가 똑같은 행동을 했다면 구속을 하든, 불구속을 하든 같은 처우를 받는 것이 정상 아니냐는 것이다. 더한 것은 언론들의 보도 행태에 있다. 일반인에게는 ‘절도’라고 부르면서 함께 들어간 기자에게는 ‘동행’이라는 말장난식의 보도를 하는 것이다.

'드루킹' 출판사 절도범 총 3회 무단침입...기자도 동행 <YTN>
<TV조선>기자, 드루킹 느릅나무출판사 무단침입 <미디어오늘>
<TV조선>기자, 드루킹 출판사서 태블릿PC·USB 가져가 <mbc>
드루킹 사무실 침입한 종편기자가 태블릿PC 가져가... 함께 침입한 40대는 구속 <한국일보>
드루킹 출판사 절도에 종편기자도 가담 <KBS>

이 사건을 보도한 매체도 그렇게 많지도 않지만 보도했다고 하더라도 사건을 제대로 기술한 매체는 극히 드물다. ‘절도’라는 표현을 정확히 사용한 매체는 KBS 외에는 없었다. ‘동행’ ‘무단침입’ ‘가져가’ 등의 왜곡된 표현들뿐이었다. 이를 동업자 정신이라고 해야 할지 공범의식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시민들 반응이다.

“드루킹 출판사 절도에 종편 기자도 가담” (KBS 뉴스 9 보도화면 갈무리)

이번 사건은 경찰이 수사 중인 장소에 침입해 증거물을 탈취한 사건으로 취재 의욕으로는 포장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언론 누구도 그 심각성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보도 행태에 의하면, 기자들이 취재를 이유로 남의 집 담을 넘고, 금고를 터는 일이 대단히 일상적인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언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함께 무단 침입해 똑같이 남의 재산을 훔친 두 사람에 대해 현저하게 다른 조치를 한 경찰은 더 심각하다. 일반인 모씨가 훔친 물건들은 양주 2병과 라면, 양말 등 잡다한 것들이다. 오히려 <TV조선> 기자가 들고 나온 태블릿PC와 USB가 금액으로 따져도 더 많을 것이다. 경찰이 언론 눈치를 보느라 형평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TV조선>은 23일 ‘뉴스나인’을 통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TV조선>은 일반인 모씨가 <TV조선> 기자에게 자신이 경공모회원이라고 소개했으며, 건물주로부터 관리권한을 위임받았으니 함께 들어가자고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그런 후 곧바로 제자리로 가져다 놓으라고 지시했고, 반환 사실을 확인했다고도 해명했다. 또한, 보도에는 전혀 이용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TV조선>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구속된 모씨의 진술과도 다르다. 무단침입 당시의 진술이 서로 다르다면 증거인멸의 위험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구속 사유에 해당한다. 더군다나 아직 경찰로부터 태블릿PC 등 <TV조선>기자가 가져간 물품들을 돌려받았다는 확인이 없는 상황이다. 설혹 돌려놓았다고 하더라도 수사 중인 증거물을 훼손했을 가능성에 대한 수사도 필요하다. 이 점이 이번 사건에서 가장 핵심이 될 지도 모른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한편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이 개시된 ‘TV조선 종편 허가 취소 청원’이 9일 만에 20만 명을 돌파해 청와대의 공식답변을 기다리게 됐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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