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말 예쁘게 하는 누나 유인나! <선다방> (4월 15일 방송)

tvN <선다방>

소개팅, 썸, 연애를 소비하는 예능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SBS <짝>의 뒤를 잇는 연애 예능들이 종종 등장한다. 대개 구성은 비슷하다. 남녀가 6~8명 정도 출연해서 데이트권을 둘러싼 경쟁을 하고, 삼각관계를 이루다가 1~2 커플이 탄생하는 흐름이다.

그 속에서 tvN <선다방>은 최근 연애 예능의 공식을 모두 비껴간다. 무경쟁, 무간섭, 공개주의. 기존 연애 예능은 경쟁 체제이며, 진행자가 남녀 출연자의 러브라인에 참견하면서 훈수를 두고, 블라인드 만남이라는 명분으로 초반에는 출연자들의 나이, 직업, 학력 등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다방>은 경쟁하지 않는다. 제작진이 사전에 짝을 정해준 두 남녀가 카페에서 만난다. 출연자 정보는 이미 스타 카페지기 유인나, 양세형, 이적이 사전 입수해서 시청자들에게 나이, 직업, 이상형, 성격 등을 공개한다. 맞선 남녀가 만나는 그곳에 스타 카페지기들이 있지만, 그들의 역할은 ‘간섭’이 아니라 ‘응원’에 가깝다. 긴장되고 어색할 맞선 남녀를 위해 커피를 만들어 주고, 잠시 화장실에 간 맞선녀가 민망하지 않도록 일부러 밖에서 노래를 부르고, 말의 속도가 빨라진 맞선남에게 맞선녀 몰래 쪽지를 건네며 말을 천천히 하라고 조언한 모습은 정말 배려의 절정이었다.

tvN <선다방>

맞선 남녀가 떠난 뒤 카페지기들이 그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지만, 평가나 간섭이라기보다는 연애, 사랑, 진심, 인연 등에 대한 깊은 대화다. 몇 커플이 탄생할 건지, 어떤 남자가 가장 훈남이었는지 같은 류의 간섭은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맞선남녀들의 태도를 되새김질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본인을 얼마나 현명하게 만드는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선다방>은 실로 오랜만에 만난 힐링 연애 예능이다. 연애 예능이 언제 ‘힐링’ 기능을 담당한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시청 후 피로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운명의 짝을 만나면 유학을 포기하고 결혼하겠다는 맞선녀의 사연을 접하면서 “누군가를 만나는 게 단순히 만나는 게 아니라 많은 것을 생각해야 되는 일”이라는 양세형의 말처럼, <선다방>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굉장히 귀하게 여긴다.

tvN <선다방>

무엇보다 <선다방>을 ‘힐링’ 프로그램으로 만든 데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은 유인나다. 그녀는 같은 말이라도 참 예쁘고 따뜻하게 할 줄 아는 재주를 가졌다. 맞선 남녀의 모습을 묵묵하게 관찰하면서 그들의 태도 너머에 있는 감정까지 살필 줄 아는 통찰력까지 겸비했다. 유머감각 있었던 맞선남을 선택하지 않은 맞선녀의 결정에 대해 유인나는 “웃긴 남자가 아니라 나를 웃게 해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맞선녀의 마음을 헤아렸다.

유인나는 방송 말미에 “<선다방>을 하면서 커플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시청자들은 <선다방>을 보면서, 유인나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다. <선다방>에서만큼은 커플지옥이 아니라 커플천국이라고 말이다.

이 주의 Worst: 남편의 개선도 시급하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4월 19일 방송)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파일럿 방송 첫 회부터 뜨거운 화제였다. 새댁 민지영, 만삭 며느리 박세미, 워킹맘 김단빈 등 세 며느리가 출연해 자신이 시댁에서 겪은 일을 보여주는 방송인데, <부부클리닉>만큼이나 리얼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첫 시댁 방문에서 앞치마 차림으로 요리를 하고 어른들 눈치 보느라 저녁밥도 제대로 못 먹은 민지영, 병원 스케줄부터 아이 옷, 교육 문제까지 시어머니 취향에 맞춰야 하는 김단빈도 고달프고 고단해 보였지만 박세미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었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박세미 시부모님은 아이의 옷, 교육, 음식 같은 수준이 아니라 며느리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위험한 참견을 감행했다. 둘째 출산을 앞둔 박세미는 의사로부터 ‘첫째 출산도 제왕절개를 했기 때문에 자궁 파열의 위험이 있어 이번에도 제왕절개를 해야 된다’는 말을 듣게 됐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제왕절개 시 아이의 아이큐가 2% 낮아지고 모유가 마르며 아토피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자연분만을 강요한다. 그 사이에서 남편 김재욱은 “그럼 절충을 해야 되나”라는 막말을 하면서 ‘진통 1시간을 견뎌보고 제왕절개를 하자’는 말도 안 되는 협상안을 내놓았다.

시아버지가 간섭할 게 따로 있지, 생명을 위협하는 출산 방법까지 강요하는 건 백 번 양보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설사 시아버지의 말처럼 자연분만으로 아이의 아이큐가 2% 좋아진다고 해도 그것이 며느리의 자궁파열 위험과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일인지 되묻고 싶다.

그러나 시아버지보다 더 이해불가인 존재는 바로 남편이다. 절충할 게 따로 있지,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아내와 자연분만을 강요하는 부모 사이에서 “그럼 절충을 해야 되나?”라는 말을 중재안이라고 내놓은 것일까. 아내를 위해 본인의 힘으로 부모를 설득해야 하는데, 계속해서 의사에게 제왕절개 소견서를 떼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속 시부모와 아내의 갈등 상황에서 남편의 유형은 둘 중 하나였다. 김단빈 남편처럼 한 발 물러서서 모른 척 하거나, 박세미 남편 김재욱처럼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막말을 하거나.

그래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누구나 겪고 있는 고부갈등을 공감가게 그렸다는 호평을 들었음에도, 남편을 다루는 방식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남편을 너무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게 대한민국 남편의 현실이다. 다만, 남편의 눈치 없고 철없는 행동을 보여주는 데서 그쳤다는 점이 아쉽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문제인 것 같지만 결코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나온 문제”라는 김지윤 소장의 말처럼, 갈등 표출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제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을 도울 필요가 있다.

며느리가 처한 이상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정규편성된 이상 그 너머의 역할까지 해야 될 것이다. 더 이상 시부모의 막말, 남편의 무능력함을 무기로 삼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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