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분당 300원이냐 장당 1600원이냐. 단순히 1300원 차이가 아니다. ‘일한 만큼 받겠다’라는 프리뷰어의 당연한 권리이자 요구다. 12일 프리뷰어 97명은 방송사와 제작사에 “분당 300원이 아니라 장당 1600원을 달라”고 KBS 구성작가협의회에 성명서를 냈다. (관련기사 ▶ 방송 노동 단기 ‘분당 300원’을 아십니까)

프리뷰어는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은 방송계 관계자는 물론 시청자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최근 tvN <윤식당>이 엔딩 자막에 프리뷰어의 이름을 올려 존재를 알리고 있다.

KBS, MBC, EBS, JTBC, TV조선 등의 프리뷰 모집 공고(미디어스)

프리뷰는 방송 촬영본을 문서화시키는 작업을 뜻한다. 대사의 양이나 상황에 따라 작업 시간은 달라진다. 단순히 대사뿐만 아니라 상황과 장면 모두 글로 표현해야 한다. 쉴 새 없이 타이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력이나 청력, 손목과 어깨에 피로도가 높은 업무다.

프리뷰어들은 KBS 구성작가협의회 사이트를 통해 일을 구한다. KBS 구성작가협의회의 ‘번역/프리뷰’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모집 글이 올라온다. 방송사 프로그램팀이나 제작사에서 모집 글을 올리며, 프리뷰어 개인이 접촉을 해 일을 진행한다. 프리뷰어들이 작성한 프리뷰는 방송 구성 회의에서 검토용으로 사용된다. 방송을 제작하기 위해서 찍는 촬영분은 60분짜리 테잎 50~60여개 정도인데, 프리뷰가 없다면 모든 테잎을 다 돌려봐야 하기 때문에 방송제작에 필수적인 요소다.

3월 14일 기준 25개의 모집 글이 올라왔으며 ▲EBS 6건 MBC 5건 KBS 5건 JTBC 4건 TV조선 3건 SBS 2건 순이다. 이 중 KBS, MBC, JTBC, TV조선은 모두 ‘분당’으로 보수를 지급하고 SBS와 EBS는 ‘분당’과 ‘장당’이 혼합되어 있다. 금액은 분당 300원에서 350원 사이다. SBS만이 ‘장당 3500원’과 ‘분당 400원’을 지급해 가장 처우가 좋은 것으로 드러났다.

런닝타임이 1시간인 영상물일 경우 평균적으로 3시간 이상 소요된다. 하지만 ‘분당 300원’ 기준은 프리뷰어가 작업한 시간이 아니라 영상 런닝타임 기준이다. 3시간이 걸린다는 가정 하에선 시급 6000원 수준이다. 2018년 최저임금 7530원에 한참 못 미친다.

물론 역의 가정도 존재한다. 영상물에 대사가 거의 없는 경우 1시간 안에 끝낼 수도 있다. 그런데도 프리뷰어들이 ‘분당 300원’이 아닌 ‘장당 1600원’을 주장하는 이유는 “일한 만큼만이라도 제대로 인정받고 싶다”는 심정 때문이다. 미디어스는 현직 프리뷰어 3명의 인터뷰를 통해 프리뷰어 작업 환경의 실태와 처우, ‘장당 1600원’의 의미를 살펴봤다.

(게티이미지뱅크)

Q. 분당 300원과 장당 1600원, 어떤 의미가 있는가

ㄱ씨 – 페이지당 계산을 한다면 프리뷰어에게 손해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의뢰받은 작업물의 양이 얼마일지 모르는 상태에서의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그냥 우리가 일한 만큼만 받고 싶다는 것이다.

ㄴ씨 – 얌체 같은 곳이 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면 ‘분당 300원’으로, 일이 없으면 ‘장당 –원’으로 올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신경전 없이 일한 만큼만 받고 싶다. 우리가 성명서를 올린 이유는 돈을 더 달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일한 시간을 인정해 달라는 뜻이다.

ㄷ씨 – 60분 영상이면, 재생만 시켜도 한 시간이다. 속기사 정도면 2시간 안에 끝낼 수 있지만 보통 3시간 이상 걸린다. 그것도 3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서 타자만 쳐야지 끝낼 수 있다. 대화가 많거나 복잡한 영상은 4시간이 넘어간다. 분당 300원으로 계산하면 시급 5000원을 밑돌기도 한다. 그냥 우리가 일한 대가는 인정해줬으면 한다.

Q. 프리뷰 단가는 물가 상승률에 따라서 오르는 편인가?

ㄴ씨 – 성명서에도 나와 있지만 10년 전 SBS는 장당 1600원, 밤샘 프리뷰는 장당 1800원을 보장해줬다. 우리가 요구하는 금액은 10년 전 SBS가 지급해줬던 금액이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우리의 요구사항이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공고가 많은 것도 현실이다.

ㄷ씨 – 단언컨대 하나도 오르지 않았다. 수년 전에도 분당 250원 수준이었다. 작년까지도 분당 250원으로 공고문이 올라왔다. 물가가 오르고 최저시급이 오르지만, 우리의 가치는 오르지 않는다.

Q. 보수는 언제 들어오나?

ㄱ씨 – 이게 문제다. 일한 즉시 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보통 한 달 정도 걸린다. 60분짜리 작업을 해 18000원을 받기 위해 한 달을 기다리는 것이다. 2달, 3달이 지나고 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ㄴ씨 – 정산일이 정해져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돈이 들어오지 않아 연락을 해보니 내 계좌가 누락된 경우가 있었고, 임금 지급이 미뤄졌는데 고지를 않은 경우도 있다. 정산일이 불규칙적이니 프리뷰어들이 하나하나 확인하고 전화를 걸어야 한다. 돈을 얻어내는 것이 일상이 됐다.

ㄷ씨 – 상당히 늦게 들어온다. 더 문제는 정산이 늦게 되는 경우다. 정산이 늦어져 돈 달라고 연락하는 일이 한 달에 한 번은 꼭 있다. 프리뷰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경우 정산이 늦어지면 생활에 문제가 생긴다.

Q. 임금과 관련해서 절대적 ‘을’ 인 것 같다.

ㄱ씨 – 맞다. 난 임금을 체불 당한 적이 있다. 준다고 한 날짜가 한 달, 두 달 미뤄지더니 결국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노동청에 가서 신고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프리랜서라서 우리가 해줄 게 없다. 전화 정도는 해주겠다”였다. 노동청 직원이 제작사 대표에게 전화해서 “임금 좀 그냥 주시죠”라고 하더라. 결국, 돈을 받지 못했다.

나처럼 돈 떼먹히는 프리뷰어가 흔하다. 프리랜서라서 노동자도 아니고, 법의 보호를 받지도 못한다. 계약서도 안 썼기에 아무런 증거가 없다. 돈을 받으려면 민사 소송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게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신용카드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결국, 하청의 문제였다. 방송사가 A 제작사에, 다시 A 제작사가 B에게 하청을 넘긴다. 방송사나 A 제작사는 이미 B 제작사에 돈을 줬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B가 안 준다고 버티면 끝이다.

ㄷ씨 - 난 20만 원 정도를 상품권으로 받은 경우가 있다. 한겨레21의 상품권 페이 보도 이후 그런 관행들은 없어진 것 같지만, 예전에는 상품권으로 주는 경우가 있었다.

윤식당 엔딩 크레딧. 프리뷰어 명단이 나와있다(tvN)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 프리뷰어들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보수를 받고 ▲임금 체불이 상시로 일어나고 ▲스스로 임금 체불을 당하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실제 돈을 받지 못해도 아무런 해결방법이 없는 것이다.

끝으로 ㄴ씨는 "프리뷰어도 제작진에 참여하는 인력이라는 걸 인정해달라"고 부탁했다. ㄴ씨는 “최근 tvN의 <윤식당>에서 엔딩스크롤에 프리뷰어 명단이 올라가 있는 걸 보고 감동했다”며 “<윤식당>처럼 프리뷰어를 제작진으로 인정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도 제작에 참여한다는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며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줬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프리뷰어에 대해 KBS, MBC, EBS 홍보팀에 문의한 결과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상황을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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