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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유형지에서'와 2018 이재용 판결

기사승인 2018.02.13  08: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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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규찬 칼럼]

카프카는 참 신비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이야기는 온통 수수께끼 같다. 아주 먼 세계의 동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미스터리는 오늘의 우리에게 지극히 현실적으로 들린다. 강하게 와 닺는다. 잘 알려진 <소송>, <변신> 등이 그러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 초단편들도 모두 그렇다. <유형지에서>(In the Penal Colony>가 그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서구의 한 연구자가 섬나라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 신임 최고지휘관의 부탁을 받고 어느 황량한 장소에 마련된 유형지를 참관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시설을 책임진 장교-관리가 전임지휘관이 발명한, 알아서 심판하는 자동기계장치로 끌려온 죄수를 곧 처형할 예정이다. 그에게 방문자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관리는 또 그에게 이렇게 답한다.

저 죄인은 자기가 죽을 운명임을 아는가? 아니다. 변호의 기회는 있었나? 없었다. 형량을 미리 알려줘야 하고, 변호의 기회도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필요 없다. 거짓말만 늘여놓을 테니. 경비 서던 중 졸다 자기를 깨운 상사에게 대든 죄인의 몸에 무쇠로 된 처형장치가 바늘로 또렷이 판결문을 새길 것이다. ‘이 자는 상관의 명령을 복종하지 않았다.’ 죄는 그렇게 정해진다.  

이곳의 일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요. 소인이 이곳에 임명된 법관이기도 합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말입니다. 전임 최고 지휘관의 편에서 오래 쭉 함께 일을 해왔고, 이 장치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가장 잘 알기 때문이지요. 제가 형량을 정하는 원칙은 이렇게 간단합니다. ‘그의 죄인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재용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2018년 삼성제국의 변방에서 이 소설은 결코 낯설지 않다. 이상하고 어려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카프카의 <유형지에서>는 이재용-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근거 없는 낭설이라 판정하고, 자본-비선-국가의 커넥션을 사실도 진실도 아닌 허위라고 판결한 거짓 공화국 뒤집힌 세계의 독자들을 위한 단편이다.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법정은 여전히 권력에서 한 치 벗어나지 않으려는 관리가 지키고 있다. 성벽 쌓기에 헌신하는 법왕이다. 법 해석은 가히 그의 자의에 놓여있는데, 어느 날 그 절대권위의 면전에 소송에 통달한 어떤 수형자가 조아리고 선다. 졸다 상사에게 대든 군인과 달리, 아비로부터 부를 승계받기 위해 범죄자와 부정하게 모의한 죄가 큰 자다.

화려한 변론의 기회가 잔뜩 제공된 젊은 회장님이다. 변호사들로부터 감방을 벗어날 유예 형량까지도 미리 인지 받았을 공산이 큰 절대권세의 피고다. 그를 상대로, 무자비한 처형장치와 거리 먼, 엄숙함으로 치장된 법정의 관리가 엄숙하게, 자비롭게 다시 선고한다. 당신은 무죄요. 당신을 죄인이라 한 자들이 큰 잘못을 저질렀소.

카프카 소설을 거꾸로 읽으면 된다. 위에 짧게 인용한 대목을 뒤집기만 하면 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죄인일 수밖에 없는 자가 있다. 반면, 죄인일 수가 없는 부류도 있다. 이재용 당신은 공화국에 절대 죄를 저지르지 않음을 내가 잘 아오. 형량을 정한 이치는 이렇듯 간단하오. 당신과 같은 사람은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힐 수 없소. 결코.

회장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구치소를 빠져나온다.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과 겸손한 말투로 세상과 다시 마주친다. “나를 돌아본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 반성할 것이고, “앞으로 더욱 세심히 살피며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할 테다. 그를 칭송하는 부류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열렬하게 반긴다. 당신은 애당초 죄인이 될 수 없었소!  

신문들도 똑같은 목소리였다. 방면된 회장의 삼성을 위대한 기업으로 떠받들고 그러면서 거대재벌광고를 욕망하는 이들의 작태는 가히 가릴 것 없는 광기에 가까웠다. 기승전이 그러니 당연히 따라올 기레기 꼴, 찌라시 짓, 선전 플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서글픈 추태였다. 공화국 미래를 암울하게 지시하는 불길한 신호였다.    

허구의 소설과 달리, 사실의 현실은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두려움과 우울을 분노, 절망 불쾌의 감정과 함께 잔뜩 남겼다. 이재용 재판의 시공간에 그치지 않는, 찜찜한 파급효과다. 비인간적인 기계장치와 독점적 관료권력이 결합해 구동되는 카프카 소설 속 범인처형 체계와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은 현실 법집행 시스템의 심각한 후유증이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유형지에서(외)』 표지 (범우)

사실, <유형지에서>의 결말에는 이재용 재판의 뒤집기와 또 다른 반전이 있다. 공화국의 기득권 부자들은 절대 죄인일 수 없다는 음모론으로 끝나지 않으며, 약자이고 빈자인 보통의 인간들은 조그만 일로도 큰 죄인이 된다는 냉소적인 교훈으로 마감되지 않는다. 법집행기관에 내재한 비정상작동의 가능성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박아놓고 있다. 읽어보자.

죽은 최고지휘관이 제작한 자동 처형 장치를 철두철미하게 신봉하는 장교-판사가 형 집행 과정과 기계작동 매커니즘을 방문자에게 소상히 설명한다. 그는 지금 불안하다. 신임 최고지휘관에게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새 지휘관이 지원을 꺼리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 ‘여인네’들의 말을 듣고는 시스템의 효용성과 정당성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매일 유형지 주변에 처형 구경을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렸던 시대는 이렇게 끝난단 말인가? 유형지 과거의 영화를 되돌리기 위해, 관리는 외국 방문객에게 매달린다. 자신을 도와 새 지휘관에게 시설의 가치를 말해 줄 것을 호소한다. 그걸 내방객이 거부하자, 그는 끌려온 죄수를 대신해 자신이 기계 아래에 몸소 눕는다. 장치의 완벽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어떤 변론기회도 갖지 못한, 자신이 죄인인지조차 모르는, 자신에게 떨어진 형량이 얼만지도 모르는 사람의 몸에 오랜 시간에 걸쳐 판결문을 새겨 쓰는 장치. 살인적 고통 체험을 통해 죄를 깨닫고 심지어 속죄도 받게 해주는 법 장치. 그럼으로써 살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죄 값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말해주는 징벌 기계.

이번에는 과연 어떻게 판정할 것인가? 무죄를 선언하며 작동을 멈출 것인가? 판단과 집행의 톱니바퀴 기관이 쿵쾅거리며 돌아간다. 아뿔싸. 고장이다! 기관의 문제다! 누운 관리를 꺼낼 틈도 없이, 무수한 쇠바늘이 발가벗고 누운 관리의 몸에 콱 내리꽂혀 박힌다. 서서히 판결문을 새겨가는 대신에, 날카롭게 그의 살을 파고든다. 온통 피바다가 된다.

마침내 큰 바늘이 이마를 관통하며, 법관은 여전히 기계를 확신하는 시선으로 눈을 뜬 채 죽어간다. 톱니바퀴처럼 짜인 법이라는 이름의 장치는 이렇듯 정상의 궤도에서 쉽게 이탈하면서 법 집행관의 생명까지도 순식간에 박탈해버린다. 진지한 인간의 판단. 사회적 공동 책임이 배제된 기계적 법조문 적용 지닌 파괴적 효과, 테러의 고발인가?

이 소설을 지금 누가 읽어야 하나? 2018 우리가 <유형지에서>에서 얻을 교훈은 과연 뭔가? 카프카 소설은 단지 허구일 뿐인가? 법은, 법을 해석하고 형을 집행하는 자는 우리에게 대체 뭔가? 북에서 온 손님들을 반기며 겨울 올림픽을 즐기고 나면, 이재용 및 삼성의 문제와 함께, 법의 주제가 이 공화국에 다시 무겁게 대두할 것인가?  

전규찬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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