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한겨울, 지역 이주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는 지역순회캠페인의 일환으로 이주노조 활동가들이 인천 동춘역에 모였다. 이름조차 생소한 동춘역은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남동공단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마트가 위치한 곳이었다. 예전에도 인천지역의 활동가들과 함께 이주노동자 선전전을 했던 곳이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유인물과 명함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그런데 웬걸, 드넓은 대형마트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만 있을 뿐, 우리가 만나려고 했던 이주노동자들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입구가 있는가 해서 마트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주노동자들이 자주 타고 다니는 자전거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가만히 서있다가는 오늘 하루 공 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긴급회의를 열었다. 보통 오후1~2시부터 장 보러 나오는 이주노동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의견과 차라리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부평역으로 가보자는 의견이 제출되었다. 결국 부평역으로 옮기자는 위원장님의 결단과 함께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부평역 근처 네팔 식당

복잡한 부평역 지하상가를 돌면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려고 노력했지만 이마저도 허사였다. 이렇게 길거리에서 무작정 이주노동자를 만나는 건 쉽지 않겠다는 판단과 함께 부평역 근처에 있는 네팔식당을 방문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일단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네팔식 만두인 모모와 네팔식 백반과 같은 달밧세트를 시켰다. 네팔씩 찐만두인 모모는 여러 소스에 찍어먹을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고수랑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든 쳐트니라는 녹색 소스의 매운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배를 채우고 나니 주변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몇몇 보였다. 캠페인 시작 2시간 만에 드디어 만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이주노조 명함과 유인물을 나눠 주면서 무슨 문제 있으면 꼭 연락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다음 행선지는 부평구청역 근처에 위치한 한국이주인권센터. 때마침 이주노조 조합원이 센터에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 방문했다. 인천지역에 있는 이주민 구술생애사 인터뷰가 진행 중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네팔 조합원과 커피 한 잔을 하며 안부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이주인권센터 박정형 활동가에게서 인천지역에 있는 난민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 들었다. 주로 G-1비자를 가진 난민신청자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일자리였다. 중고차 시장이나 일용직 등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아서 사실상 생계유지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의 밀집지역인 인천 거북시장 인근 거리

다음 행선지는 또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밀집지역인 인천 거북시장이다. 그나마 땅값이 좀 저렴한 편인 인천 서구 석남동의 거북시장을 중심으로 중소영세사업장들이 밀집되어 있어, 여러 나라의 이주노동자들도 그 주변에서 많이 살고 있었다. 거북시장을 돌면서 아시안 마트, 각 나라 식당 등을 방문하였고 간간히 이주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방문했을 때보다 상권이 훨씬 침체된 분위기였고 이주노동자들도 많지 않았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살고 있는 어떤 이주노동자는 작년 한 해 출입국단속이 심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거북시장도 예전처럼 이주노동자가 많지는 않다고 했다.

이주노동자의 특성상 한곳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일자리상황이나 출입국단속 등 여러 불안요소들에 늘 노출되어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다. 특히 2018년 이주노동자에 대한 주요 정책을 결정한 제25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2017.12.22.)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 강화(합동 단속 기간 20주→22주, 단속인원 340명→400명으로 확대), 미등록 체류율이 높은 송출국가에 대해서는 국가별 외국인 도입규모 결정시에 불이익 등 단속 추방 강화계획을 지속 추진하고 있어서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불안감과 공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어보였다.

근처 마트에서 만난 한 이주노조 네팔조합원은 선뜻 본인의 기숙사에 같이 가자고 했다. 빈손으로 갈 수는 없어서 라면과 음료수 한 박스를 사들고 찾아간 기숙사는 정말 오래된 연립빌라였다. 4층에 위치한 기숙사는 작은 부엌과 방이 두 개였는데 각각 네팔 이주노동자 2명과 베트남 이주노동자 1명이 나눠 쓰고 있었다. 한 달에 10만원씩 숙식비를 내고 있고 공과금은 별도로 낸다고 하는데 올해 인상된 최저임금으로 인해서 언제 또 숙식비가 인상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좀 씁쓸했다.

기숙사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이주노조 네팔조합원

기숙사에서 휴식을 취하던 다른 네팔이주노동자는 갑작스런 방문에도 불구하고 이주노조 활동가들에게 요리를 대접하겠다면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치우라”라고 불리는 네팔 전통음식은 만드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일단 물소고기를 말려서 양파, 생강, 고추 등으로 잡내를 없애고 약간 납작한 네팔쌀은 한번 삶은 뒤에 바로 볶아서 얇게 빻은 상태로 함께 곁들어 먹는 음식이었다. 네팔에서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겨먹는 간식이라고 한다. 물소고기는 처음 먹어봐서 어떤 맛일지 궁금했는데 흡사 오징어처럼 질긴 것만 빼면 식감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고 같이 먹는 네팔쌀도 마치 시리얼마냥 아삭아삭했다.

치우라를 함께 먹으면서 한국에 이주노동을 하러 온 이야기, 회사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문제들, 이주노조에서 함께했으면 하는 활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올해 말에 비자가 만료되는 한 이주노동자는 그래도 이주노조를 만나서 큰 어려움 없이 한국에서 일했다면서 연신 감사의 인사를 표하기도 하셨다.

하루 종일 인천지역을 돌면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직접 기숙사를 방문하고 평소에 듣기 어려운 깊은 이야기들도 나눌 수 있었다. 앞으로 최소 한 달에 한번이라도 정기적으로 지역을 순회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삶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이주노동조합으로 거듭나기를 다짐하게 되는 소중한 하루였다. 다음은 또 어느 지역에 가서 어떤 이주노동자를 만나고 어떤 음식을 함께 나눌지, 그런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노동조합 활동을 그려보게 되었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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