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파일럿 방송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던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정규편성 된 첫 방송이 공교롭게도 <썰전>과 정면대결의 모양새를 갖게 됐다. 편성이라는 게 고려할 것이 매우 많아서 딱히 <썰전>을 의식한 것이라고 하기는 힘든 요소도 있겠지만, 적어도 진행자인 김어준은 확실하게 <썰전>의 유시민을 도발했다.

첫 방송, 첫 장면에서 김어준은 세 가지 약속을 했다. 첫 번째가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도, 멈추지도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둘째는 ”얼굴 클로즈업 웬만해선 안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약속은 ”유시민 작가... 새 일자리 알선해 드림“이라고 했다.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물론 이 세 가지 약속 중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은 첫 번째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김어준이 진행해온 뉴스 프로그램들이나 팟 캐스트를 들었다면 익숙할 그의 유머코드라고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다만, 세 번째 약속의 경우 웃자고 한 말이 분명하지만, 어차피 맞붙게 된 목요일 시사 프로그램의 터줏대감 <썰전>에 대한 도발만은 진심으로 보였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사실이었지만 <썰전>을 사랑하는 시청자들에게는 동시간대에 두 프로그램이 편성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없지 않다. 요즘 <썰전>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더라도 말이다. 반면에 치열한 경쟁구도로 인해서 <썰전>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모두에게 더욱 분발할 동기가 생겼다는 사실에 새로운 반전을 기대할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당장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썰전>을 위협할 만한 공격력을 지녔냐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첫 방송 프리미엄 속칭 ‘개업빨’을 감안했을 때 18일의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에서 <블랙하우스>의 우세를 점칠 수 있다. 물론 지상파와 종편의 특성으로 시청률의 직접 비교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적어도 화제성에서는 <블랙하우스>가 <썰전>을 압도했다.

<블랙하우스>와 <썰전>이 방영되는 때부터 시작해서 줄곧 포털 실시간 검색은 <블랙하우스>와 관련된 단어들이 장악했다. 유시민 역시 검색어에 올랐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썰전> 때문이 아니라 그 전에 <뉴스룸> 3부 형식으로 진행된 가상화폐 관련 토론의 영향이었다. 흥미로운 안타까운 것은 유시민은 이 토론에서 요즘 <썰전>에서 볼 수 없는 압도적 토론능력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JTBC <뉴스룸> 긴급토론 ‘가상통화 긴급토론,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

뭔지 모르게 맥이 빠진 듯한, 날 것의 기운이 잘 느껴지지 않는 요즘 <썰전>의 아쉬움이 이 토론에서는 없었다. 토론에 참여한 패널 중 가장 비전문가면서도 전문가들을 논리로 압도한 유시민의 모습은 분명 이어지는 <썰전> 시청률에 동력을 전달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썰전>은 <블랙하우스>의 화제성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한 <썰전>과 <블랙하우스>의 전쟁이 결과를 미리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블랙하우스>의 도전에 대한 <썰전>의 응수에 기대를 걸어보게 된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본 <블랙하우스>가 <썰전>을 압도할 만큼의 파괴력을 보였다고는 할 수 없다는 점도 향후 두 프로그램의 전쟁 결과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게 했다.

김어준의 농반진반 도발에도 불구하고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시작부터 지상파 혹은 SBS의 한계가 입에 오르는 정도다. 다만, 양정철과의 납치 인터뷰는 다른 방송이 생각지도 못한 허를 찌른 구성이었다. 김어준의 인맥으로 일궈낸 특종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런 깜짝 구성이 앞으로도 계속 가능한지가 관건일 뿐이다. 또한, 503이라는 숫자에 얽힌 두 전직 대통령의 공통점을 전한, 기자보다 더 기자 같은 개그우먼 강유미의 존재감 역시 여전히 반짝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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