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일정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으로 큰 고비를 넘겼다. 애초 우리 정부는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 자리에서 사드 문제를 언급하지 않기를 바랐을 테지만 역부족이었다. 다만 시진핑 주석의 사드 관련 입장 표명이 기존의 것보다는 훨씬 온건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

애초 우리 정부의 우려는 시진핑 주석이 사드 관련 문제를 언급하면서 3불입장의 준수 요구를 재론하는 등의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맞춰졌다. 중국 관영매체인 CCTV가 방중 일정이 시작되기 직전 문재인 대통령을 인터뷰 해 3불입장 준수 의지를 드러내달라는 요구를 노골적으로 한 점은 걱정할 만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키웠다.

그러나 정상회담 자리에서 시진핑 주석의 발언은 “한국이 사드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하기 바란다”는 수준의 원론적 언급에 그쳤다. 시진핑 주석은 사드 문제를 “모두가 다 아는 이유로 한중관계가 후퇴를 겪었다”고 표현해 민감한 쟁점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이런 흐름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방중 일정을 통해 사드 문제의 완전한 종결을 관철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이 문제가 앞으로 양국 간의 경제협력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 것 아닌가 하는 평가도 가능한 상황으로 보인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그럼에도 사드 문제를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중국의 관영매체들이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중국이 엑스밴드레이더 운용 등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국제정치적 지정학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준수를 촉구하고 있는 3불입장에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방어체계(MD) 가입 거부와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가 들어간다는 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라면 앞으로 사드가 다시 양국 간 핵심 현안으로 떠오르느냐 여부는 이후 미중관계의 전개 양상에 달렸다고도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열린 MOU 서명식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는 사드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이 중국 민족주의의 문제와 결합해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사드 보복’이 가능한 것은 중국 공산당 정부가 권위주의 체제의 도구를 동원해 민간영역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사실이 작용한 결과이지만 여기에서 대중 일반이 민족주의적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가 바탕이 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의 사드 문제에 대한 선전과 중국 국민들의 정서에 내재한 민족주의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문화대혁명 이후로 일상적인 통치의 위기감을 겪고 있다. 통치의 위기감은 자신들이 혁명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자기평가에서 나온다. 오늘날 중국 사람들에게 대규모의 열정적 행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도화선이 되고 있는 것은 민족주의다. 청나라를 타도한 1911년 신해혁명 이후로 이 원리는 변하지 않고 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대중의 민족주의적 열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이에 편승하거나 나아가서는 오히려 조장하는 방법을 통해 국제정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다. 이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분쟁이나 남중국해 문제, 대만 및 티베트 문제 등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에서 반복해서 드러난 바 있다. 한중경제무역파트너십 개막식장에서 경호를 맡은 중국인들이 한국 기자들을 집단 폭행하는 만행을 저지른 사건에 대해 중국 정부가 제대로 된 방식으로 해결에 나서지 않는 것도 이런 풍토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사드 문제는 경제라는 차원에서 일단 ‘봉합’되긴 했으나 중국의 국내정치적 또는 국제정치적 사정에 의해 언제든지 갈등이 재점화 될 수 있는 요소로서 당분간 잠복해있을 거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은 이런 상태에서 북핵문제의 해결에 대한 중국의 협력을 어떤 방식으로 얻어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가 몇 차례에 걸쳐 언급한 것처럼 현재 북핵문제의 키는 한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 쥐고 있는 상태이다. 이에 대해서는 얼마 전 화제가 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 발언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 내용은 북한이 일정 기간 이상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지 않고, 대화의 의지가 있다는 걸 미국에 알리고, 대화의 기간 동안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준비하지 않도록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조건을 언급하며 어떤 주제로든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한다는 기존의 방침을 뒤집은 것으로 해석됐다. 백악관이 이 발언이 갖는 의미를 격하하면서 틸러슨 장관 경질설에 힘이 실리는 형국이지만 어쨌든 이런 주장 속에 미국이 갖고 있는 북핵 문제에 대한 어떤 대책의 단서가 담겨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비록 한국 정부는 명확하게 답하고 있지 않지만 일부 외신 보도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내년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중에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북한은 도발을 중지하고 미국은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해 대화의 계기를 만들자는 것은 중국이 그간 북핵문제 해결의 시작점으로 주장해온 ‘쌍중단’과 사실상 같은 내용이다. 미국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는 시한을 내년 3월 정도로 보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후로 해서 북핵 문제 해결의 전환점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확대정상회담에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청와대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틸러슨 장관의 발언에서 또 하나 주목해볼 대목은 북한에 급변사태가 벌어질 경우 미군이 북한에 진입하더라도 사태를 해결한 후 다시 현재의 휴전선 이남으로 돌아가는 방안을 중국에 제안했다는 부분이다. 중국 정부는 이런 논의를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어서 진실을 알기 어렵지만, 틸러슨 장관의 이 언급은 얼마 전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내놓은 미중빅딜론과 사실상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중국군의 참전 제한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대화 국면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이후는 사실상 군사적 옵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여기서도 중국의 태도와 역할이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틸러슨 장관의 제안대로 실제 대화 국면이 열리더라도 그 결론이 한국 정부의 이익과 합치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북한이 핵을 가진 상태에서 ICBM의 불능화 정도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 그렇다면 이후 국면은 핵을 가진 국가들 사이의 군축협상이 될 수 있고 여기서도 중국의 입장은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

즉, 사태가 어떤 국면으로 가든 여전히 사드 문제는 중국이 한국에 대한 통제를 시도할 수 있는 어떤 구실로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게 지난 정부에서 사드 한반도 배치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또 강행한 대북강경파들이 남긴 결과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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