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희귀 라인업+흥미진진 이중생활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 (11월 23일 방송)

tvN 예능 프로그램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

MBC every1 <주간 아이돌>을 6년째 진행 중인 정형돈, 데프콘조차도 방송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희귀한 라인업이었다. tvN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에는 씨엘, 태양, 오혁이 출연했다. 세 명 모두 개성이 뚜렷한 뮤지션인데다, MBC <나 혼자 산다>에 일일 게스트로 출연했던 ‘동할배’ 태양을 제외하고는 일상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처음인 출연자들이었다. 그들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시청자들도 많다. 출연자 본인들에게도, 시청자들에게도 ‘이중생활’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씨엘의 미국 데뷔, 태양의 태국 솔로 콘서트, 오혁의 유럽 투어 공연. 세 사람 모두 가장 화려한 도전을 하는 순간에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 촬영을 했다. 가장 화려한 순간을 앞두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외로워지는 순간을 담겠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촬영 시점을 영리하게 정한 덕분에 그들의 이중생활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임에도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이 차별화됐던 이유다.

tvN 예능 프로그램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

19살에 데뷔해 해외 스케줄이 많았던 씨엘에게 호텔이란, 남들에게는 휴식처일지 몰라도 그녀에게는 외로움의 공간이었다. 미국 숙소에 처음 도착해서 하는 일이 향 피우기였다. 낯선 공간 곳곳을 자신의 향으로 채우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씨엘. 사소한 행동이지만 여기서 씨엘이 아닌 채린의 본모습을 추측해볼 수 있었다 초반부터 시청자들이 씨엘의 이중생활에 호기심을 갖게 될 수 있었던 건 향초라는 매개체 덕분이었다.

“한국에서는 스타지만 여기(미국)에서는 아직 신인”인 씨엘은 혼자 모든 스케줄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늘 휴대폰을 손에서 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혼자 스케줄을 정리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과 호텔 곳곳을 자신의 향으로 채우는 모습,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의지하는 스타일리스트 매튜와 허물없이 티격태격하는 모습까지 제각기 다른 씨엘 혹은 채린의 모습이 뒤섞여 ‘이중생활’이 완성됐다.

tvN 예능 프로그램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

현지 관계자들과 혼자 의사소통하면서 미국 데뷔를 준비하는 씨엘과, 룸서비스 하나로 스타일리스트와 티격태격하는 채린의 이질감. 혼자 무대를 꽉 채우며 해외 팬들의 환호를 받는 무대 위 태양과, 짜장라면 하나에 외계어까지 남발하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영배의 이질감. 그것이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을 보는 묘미였다. 특히, 태양은 서른 즈음 누구나 갖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입대로 인한 공백기 고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 그도 우리와 다르지 않구나, 우리처럼 외로움도 느끼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도 하는구나, 그러다가도 짜장라면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하는 구나. 가장 화려한 연예인들의 일상에서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자체가 <그 녀석들의 이중생활>의 기획 의도를 달성한 것이다.

이 주의 Worst: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랭킹쇼 1, 2, 3>

MBC 예능 프로그램 <랭킹쇼 1, 2, 3>

SBS <진실게임>의 추리보다 더 헐겁고, SBS <스타킹>의 일반인 출연자들보다 덜 놀랍다.

지난 24일 방송된 MBC <랭킹쇼 1, 2, 3>의 주제는 ‘암산, 덧셈이 빠른 순서대로 줄을 세워라’였다. 은행 지점장 출신 인간 계산기, 6살 때 주판에 입문해 세계 암산 대회를 제패한 슈퍼 암산 주니어, 암산 국가대표 출신 출연자 등이 출연해 암산 실력을 겨뤘다. 제작진은 사전에 문제를 푼 시간이 빠른 순서대로 출연자들의 순위를 정했고, 연예인 판정단은 그 순위를 맞추는 식으로 진행됐다.

여기서 의문. 판정단을 제외하고 과연 누가 암산왕 랭킹을 궁금해할까. 출연자들의 놀라운 실력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순위를 매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방송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제작진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 답을 찾을 순 없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랭킹쇼 1, 2, 3>

암산왕 출연자들이 등장하기 전, 연예인 판정단은 계산기를 이용해 9자리 숫자 10개 덧셈 문제를 풀었다. 1분 남짓 시간이 걸렸다. MC 김성주가 끝자리부터 한 자리씩 정답을 공개할 때마다, 연예인 판정단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암산왕들은 같은 문제를 계산기 없이 12초 만에 풀었다는 사실에, 연예인 판정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방송 내내 암산왕들의 놀라운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 ‘두 명이 동시에 부르는 숫자를 덧셈하기’ 같은 미션을 끊임없이 제시했다. 그때마다 판정단은 믿을 수 없다는 리액션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아무런 긴장감도, 놀라움도 없었다는 게 문제다. 전혀 시청자들의 니즈를 파악하지 못한, 예능 본연의 재미도 일반인 출연을 통해 얻는 의미나 감동도 없는 프로그램이다. 백 번 양보해서 일반인 출연자들의 놀라운 재능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프로그램 의미를 찾는다고 치자. 그렇다면 굳이 ‘순위’까지 매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MBC 예능 프로그램 <랭킹쇼 1, 2, 3>

일반인 출연자들의 재능 겨루기 콘셉트는 이미 오래전에 유행했던 소재다. <진실게임>이나 <스타킹>등 일반인들의 능력이나 외모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지만, 그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진실게임>은 10년 전에 이미 막을 내렸고, <스타킹>은 지난해 종영하긴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주목도가 떨어진 게 사실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를 지나 리얼리티 예능이 대세인 요즘, <랭킹쇼 1, 2, 3>은 시대 역행이라는 말조차도 부끄러울 정도로 진부하다.

2017년에 시작한 예능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올드한 주제와 방향성은 MBC가 최근 맞닥뜨린 구조적 위기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6월, <뉴논스톱>과 <내조의 여왕> 등을 연출한 김민식 PD가 MBC 사옥에서 페이스북 생중계를 통해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쳤다. 8월, <랭킹쇼 1, 2, 3>이 시작했다. 그리고 9월, MBC 구성원들이 총파업에 돌입했다. 어쩌면 이 이해할 수 없는 프로그램의 기획은 MBC가 위기 상황이었기에 가능했을 런지도 모르겠다. 지난 13일 김장겸 사장이 해임되고 다음 날인 14일, MBC 파업이 종료됐다. 그리고 20일부터 MBC 사장 공모를 시작했다. MBC가 본격적으로 정상화 시동을 걸고 있는 지금, 과연 <랭킹쇼 1, 2, 3>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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