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작됐다. 이번 수능은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5.4 규모의 지진으로 예정보다 일주일 늦춰 진행되고 있다. 매년 수능날이 되면 수험생들은 긴장된 마음으로 수능시험장을 찾고, 가족 친지까지 졸이는 마음으로 수험생을 응원한다. 수험생들이 그간의 노력의 결실을 맺기를 바라마지 않지만, 과연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동안 주입식으로 구성된 우리 교육 현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시기이기도 하다./편집자 주.

작년 7월의 키워드는 '개, 돼지'였다. 그때의 사건을 뚜렷하게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바로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 돼지 취급하면 된다"는 그 한 마디가 온 국민의 분노를 샀다. 일 년이 지난 오늘에도 저 말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것 같은 분노가 끓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교육부 관계자가 말했다는 점에서 더 그럴싸하다.

예를 들어보자. '얼음이 녹으면 ㅁ(네모)다' 위 질문에서 네모에 들어갈 정답은 무엇인가? 정답은 바로 '물'이다. 그러나 다른 답변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순수한 저학년 초등학생은 "북극곰이 운다"고 대답할 수도 있고, 과학을 좀 배운 초등학생은 "해수면이 상승한다"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하나 딱히 틀린 답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 정답은 오직 '물'만 가능하다. 물이 아닌 위와 같은 다른 답변을 쓴 학생들은 빨간색 색연필로 찍 그어진 채점을 받게 될 것이다. 획일화된 정답만을 요구하는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는 생각이나 상상력, 창의력은 불필요한 대답일 뿐이다.

▲23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을 기다리는 수험생들. (연합뉴스)

사람이 동물인 개, 돼지와 다른 점이 뭘까? 바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다른 동물과 확연히 구분되는 차이다. 연구 결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침팬지와 사람의 유전학적 차이는 보통 0.4%~1.2% 정도라고 한다. 이 작은 차이로 인간은 먹이사슬 꼭대기에 올라 수 천 년째 지구라는 행성의 주인으로 살고 있고, 침팬지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동물원에 전시되고 있다. 무엇이 이토록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을까, 1.2%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작은 차이가 '생각'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생각한 것을 다시 언어로 표현하며 의사소통을 한다. 생각하는 힘, 그리고 그 생각을 다시 표현하는 힘이 우리가 개, 돼지,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의 교육제도가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못하다.

주입식 교육이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어 단어를 많이 알고, 영어를 할 줄 알아야만 통역사를 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2017년 오늘은 주입식 교육, 획일화된 교육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이다. 스마트 폰 하나면 모든 게 번역이 되는 세상이 왔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 보다 알파고가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더 많다. 작년 3월 알파고에 패한 이세돌은 우리에게 적잖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기술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꽤나 앞서있다.

더 이상 누가 영어 단어를 더 많이 알고 있고, 수학 공식을 잘 외우고, 제한된 시간에 문제를 더 많이 푸는 교육은 쓸모가 없다. 앨빈 토플러는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게 진짜 현실이 됐다. 누가 계산기보다 암산을 빨리할 수 있고, 누가 컴퓨터보다 Spelling Bee(영어 철자 맞추기)를 잘할 수 있는가.

(사진=pixabay)

앨빈 토플러의 말대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교육을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 다가오는 4차 산업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면서 정작 우리는 4차 산업시대에 필요한 교육은 안 하고 있다. 4차 산업시대의 인재상은 의사소통, 창의력, 협업력을 겸비한 인물인데 지금의 교육제도는 여기에 초점이 하나도 맞춰져있지 않다.

교육 선진 국가들의 시험문제를 보면 심도 있는 사고력과 창의력을 요구한다. "정치에 무관심하고도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개인의 의식은 그가 속한 사회의 반영일 뿐인가" 프랑스의 수능 바칼로레아의 문제이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수능 아비투어에서는 5개 선다 문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나의 질문에 빽빽하게 채워 넣어야 하는 공백만 있을 뿐이다.

다가오는 미래는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진 시대일 것이다. 이런 미래에서 한국 학생들이 경쟁해야 할 상대는 어쩌면 내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일지도 모른다. 창의력, 사고력을 요구하는 미래시대에 과연 한국 학생들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까. 민중은 개, 돼지라는 발언은 분명 망언이었다. 그러나 우리 교육제도가 시민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 막 정치를 시작한 정치인으로, 얼마 전까지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현재는 정치를 전업으로 하고 있다. 청년문제를 청년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접근하고자 노력하며, 그동안 2030에게 금기와 다름없었던 정치의 벽을 허물고자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https://brunch.co.kr/magazine/breaktheru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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