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드라마 <20세기 소년소녀>와 tvN의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2017년을 살아가는 2,30대 여성들을 드라마의 '주체'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동일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두 드라마의 성과는 전혀 다르다. 돌아온 한예슬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20세기 소년소녀>는 그 화제성이 무색하게 2%대의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다. 반면, 남자 주인공, 표절과 관련된 잡음으로 시작부터 삐걱거렸던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그 초반의 문제들을 불식시키며 매주 케이블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화제의 드라마가 되고 있는 중이다(10회 4.197%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가입 가구, 전국 기준).

물론 지상파와 케이블의 시청률을 수치상으로 비교하는 것이 애초 무리라지만, 그럼에도 <20세기 소년소녀>의 부진은 명확해 보인다. 똑같이 동시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다른 온도차를 보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이 두 드라마의 희비를 엇갈리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현실감' 때문일 듯싶다.

내 얘기 같아 아프고 마음이 가는 <이번 생은 처음이라>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83년 함께 학원 봉고차를 타고 다니며 우정을 쌓았던, 이제 서른 중반이 된 동갑내기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20세기 소년소녀>. 드라마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감성을 고스란히 이어 청소년 시절 풋내기 첫사랑의 정서를 이어가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지만, 서른 중반의 그녀들이 보이는 현실의 사랑 이야기에서 '로맨스 드라마'의 클리셰를 뛰어넘지 못한 채 답습하며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다. 알고 보니 모쏠인 스타 사진진(한예슬 분)하며, 매번 승무원 복장의 핏을 고심해야 하는 한아름(류현경 분), 초짜 변호사 장영심(이상희 분)의 처지가 그럴 듯하지만 그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본 로코의 한 장면인 듯 익숙하다.

반면, 오갈 데가 없어 계약 결혼을 감행한 전직(?)드라마 작가 윤지호(정소민 분)와 대기업 대리로서 생존하기 위해 '비혼'을 선택한 우수지(이솜 분), 로망은 현모양처지만 현실은 옥탑방 동거 신세인 양호랑(김가은 분) 등이 매회 맞닥뜨리는 결혼과 사랑, 우정의 현실은 '너무 내 얘기 같아 마음이 아프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남세희(이민기 분)와 결혼에 골인한 지호. 세입자가 필요한 집주인과 가장 점수가 높았던 세입자라는 계약 관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선택한 결혼이지만, 대한민국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변화를 겪는다. 무엇보다 결혼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는 물론, 오해의 해프닝이지만 복남이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달려와 준 세희를 보며 지호는 집주인을 넘어 세희를 남편으로 좋아하기 시작하며 관계 설정에 변화가 생긴다. 그러나 사랑이 시작된다고 섣부르게 덜컥 '로코'의 정석으로 넘어가지 않는 게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장점이다.

결혼, 제도를 넘어선 변화에 대한 미시적 고찰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지점은 그 마음의 변화와 함께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하며 겪는 지호의 변화이다. 수지가 칭한 '감배' 모임, 즉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의 사생활에 '감 놔라 배 놔라'하는 아줌마들의 모임으로 변질된 동창 모임에서 그간 친구들과 소원했던 지호는 묘하게 안온함을 느낀다. 반면 '비혼주의자' 수지는 재수 없어 하고, 결혼이 로망인 호랑은 상실감에 시달린다.

그런가 하면, 시어머니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어 달려간 시댁 제사에서 고단수의 딸내미 같다는 칭찬을 들으며 제사일을 다 떠안은 지호는, 이른바 '착한 며느리 증후군'이라는 진단과, 수비수로서의 존경을 받았던 전력이 무색하다는 세희의 평가에 혼돈스러워 한다.

이처럼 그간 드라마들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한 여성, 혹은 부부 관계를 상투적으로 그려냈던 것과 달리,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미시적'으로 그 제도에 속해가는 지호를 들여다본다. '감 놔라 배 놔라' 해서 싫다는 수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 소속감이 싫지 않았다는 지호의 마음이나, 적당히 거절할 수 있지 않았냐는 세희의 비난에, 착한 며느리 증후군인가 들여다보면서도 마음을 놓치지 않는 문과출신 지호의 고민은 그래서 오히려 생각할 지점을 남긴다.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착한 며느리 증후군을 통해 짚어보는 '이데올로기적 관점'도 유효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으로서의 결혼, 정서적 결합으로서의 결혼의 그 미묘하고도 복잡한 사회학을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섬세하게 살펴낸다.

결혼이 로망인 호랑을 위해 2년 동안 자신이 해오던 일을 접어가면서까지 취직을 감행한 그녀의 남자 친구 심원석(김민석 분). 하지만 옥탑방에서 결혼까지의 과정은 여전히 아득한 이 커플의 현실은, 개념-무개념이라 선을 그을 수 없는, 집을 가진 세희와 지호의 고민과 또 다른 지점에서 88만원 세대의 현실을 짚어낸다. 연애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손해를 보고 싶지는 않은 수지의 계약 연애 역시 또 다른 현실이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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