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양측은 공식 논의가 아니라 아이디어 차원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셈법은 간단하다. 한 명만 탈당해도 교섭단체 지위를 잃을 수밖에 없는 바른정당은 분당을 눈앞에 두고 처지가 급하고, 국민의당은 ‘제3당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동력이 필요하다. 전례도 있다. 과거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구성했던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 그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공동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는가는 따져볼 문제다. 첫째는 규정의 문제다. 국회법은 다른 교섭단체에 속하지 않은 20인 이상의 의원으로 따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의 선례는 두 당 모두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능했다.

현실 정치의 측면에서도 양당의 공동교섭단체 구성이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이른바 ‘거대 양당’과 중도에 걸쳐 분리돼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호남과 영남이라는 지역주의적 정치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당 대 당 통합을 목표로 하는 공동교섭단체 구성이 오히려 정치적 손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선례인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도 상기해야 한다. ‘선진과 창조의 모임’은 시작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결국 9개월여 만에 붕괴했다. 붕괴의 원인은 다양하겠으나 교섭단체 구성에 나선 양당의 정치적 지향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운하 저지’ 등 제한된 정치적 의제에 대해서만 정책연대가 가능한 구조였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정책연구원-바른정책연구소 공동 주최 국민통합포럼 '선거제도 개편의 바람직한 방향' 토론회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오른쪽)와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논의하며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을 당시 창조한국당과 자유선진당의 사례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정책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경제정책에서는 중도를 지향하는 데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안보에서는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이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전술핵 재배치 요구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임으로써 외교안보정책에서의 간극도 극복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보수정권에서의 주장과 평가가 문재인 정권에서도 유지될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정권이 보수적 경제정책으로 일관할 때에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내세우는 경제정책의 차이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갖고 있는 경제적 지향의 차이가 더 부각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실질적 통합까지 바라볼 수 있느냐는 결국 두 당에서 ‘대주주’ 노릇을 하는 인사들의 의지에 달렸다는 평가도 있다. 유승민 의원과 안철수 대표의 손에 키가 쥐어져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지금 놓여있는 지형만 놓고 보면 이런 주장도 일리는 있다. 유승민 의원은 자유한국당과의 통합 주장으로부터 당을 지켜내야 하고, 안철수 대표는 문재인 정권과 각을 세워 존재감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유력 차기 대권주자라는 점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두 사람 모두 ‘대선’을 보고 있다면 그 과정에 이르는 셈법이 같을 수는 없다. 유승민 의원이 ‘보수대통합’ 자체를 부정한 일은 없다는 게 대표적이다. 그간 유승민 의원은 바른정당 내 통합파들의 움직임을 두고 일단은 현 체제로 내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까지 치르되 대선 국면에서는 보수대통합에 근거한 정치전략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즉, 다음 총선까지는 다당제 구도를 유지하는 데 진력하겠지만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수단일후보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보수단일후보 전략이란 결국 자유한국당과 같은 테이블에 앉겠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친박들에게 ‘배신자’로 찍히고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고 있지만 원래 새누리당 출신인 유승민 의원이 대선 국면에서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여기서 볼 것은 과연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도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을 것이냐는 거다. 그간 국민의당이 주장해 온 ‘거대 양당과 구분되는 제3당’이란 구상은 자유한국당과의 본질적 차별화를 전제한다. 2020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의 규모가 상당 수준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하더라도 이 당이 지난 상당 세월 동안 한국사회의 주류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차별화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비 의원총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유승민 의원이 아니라 안철수 대표를 중심에 놓고 봐도 계산이 맞지 않는다. 안철수 대표의 기존 대선 전략은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과 안철수 대표 특유의 캐릭터를 활용한 중도 공략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이 전략이 다음 대선에서도 가동되려면 ‘보수후보’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달아서는 안 된다. 호남과 중도라는 양대 기반이 모두 무너질 위험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안철수 대표가 근본적 차원에서 정치 전략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 애초 호남 민심이 안철수 대표를 선호한 것은 박근혜 정권에서 문재인 정권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이 작용한 탓이 컸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으로의 정권교체는 이미 이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전략이 유효할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일 수 있다. 그런 생각이라면 안철수 대표가 다음 대선에서 ‘보수후보’로 옷을 갈아입는 모험을 해보는 것도 불가능한 선택지는 아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국민의당 내의 호남을 기반으로 한 집단과는 결별을 각오해야 한다. 최근 국민의당을 난감하게 한 ‘연정론’은 이 ‘결별’의 가능성을 예감하게 한다. 안철수 대표가 나서서 “민주당이 장난을 치고 있다”며 입장을 정리했지만 호남정치의 일원을 자처하는 박지원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DJP연합’을 언급한 것은 미묘한 여운을 남긴다.

DJP연합은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가 주요 부처 장관에 대한 지명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국무총리직을 맡기로 하고 내각제 개헌에 합의하면서 가능해졌다. 결국 수준이 문제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할 수 있는 어떤 ‘조건’이 맞는다면 연정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로도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판에서는 야당을 하는 것보다 여당을 하는 게 더 좋다. 이런 조건이 안철수 대표의 ‘새로운 전략’과 맞물리면 국민의당도 분당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과연 안철수 대표의 ‘새 정치’가 ‘보수 혁신과 대통합’으로 귀결될 것인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과연 그게 한국정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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