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외국 드라마 특히 미드 보기가 전보다 훨씬 수월하다. 한국과 달리 미드나 일드는 유난히 형사물이 많은데, 미드를 보면 가끔 아주 생소한 장면들을 목격하게 된다. 한밤중에 열혈형사가 판사 집 문을 두드린다. 잠옷 차림의 늙수그레한 판사가 불평을 하면서 문을 열어준다. 형사는 헐크로 변할 듯 열변을 토하며 판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한다. 바로 영장이다. 한참을 고민하고 또 이것저것 따져 묻고는 판사가 법원으로 전화를 건다. 형사는 부리나케 뛰어간다. 영장이 발부된 것이다.

이 상황이 미국의 현실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는 솔직히 확신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드라마적 허구와 과장이 개입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고정 영장전담판사가 의심과 지탄을 받는 우리 현실에서는 부러울 수밖에는 없다. 실제로 최근 국정원 댓글사건과 KAI 관련사건에 대한 구속영장이 연이어 기각되면서 검찰과 법원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무죄추정원칙에 의해 구속영장은 엄격하게 심사되어야 하고, 구속영장이 피의자에 대한 징벌적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판사 출신 박범계 의원이 “국정농단과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1명의 영장전담판사에 의해서 일국의 사법정의가 왔다 갔다 한다. 이것이 과연 정상인가”라며 반대하는 데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출근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지 31일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연합뉴스

시민 대부분들이 박범계 의원의 말에 동감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높다. 물론 이는 오래 전부터 제기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현직 판사 역시도 이재용 영장 기각 이후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가 현장에서 느낀 영장제도의 맹점은 영장전담판사를 독점적으로 임명하는 법원장의 문제라는 것이다. 당연히 대법원장까지 연장되는 사법부 권력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적 대법원장이 취임하게 되는 앞으로의 6년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구속영장의 남발은 없어야 한다는 전제는 엄중하다. 다만 특검 이후 최근의 국정원, KAI 수사에 있어 법원의 잇따른 영장기각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없지 않았다. 검찰이 주장한 “법과 원칙 이외의 무엇”의 개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는, 적어도 그렇다고 믿을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법의 집행에는 국민감정이라도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동시에 판사 개인의 성향 또한 마찬가지로 영장심사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조건이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인준을 통과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주어진 사법개혁의 짐은 매우 무겁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거부한 법원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가 당장 눈앞에 놓인 판사들의 개혁요구이며, 또한 법원인사개혁을 단행해야만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법부의 느린 발걸음을 감안할 때에 개혁의 체감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부는 "항변에는 능하고, 반성과 개선에는 인색"했던 과거와 다를 것을 기대한다. 영장심사를 향한 국민의혹 해소도 그중 하나가 아닐 이유는 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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