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MBC 양사 노조가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에 들어갔고, 포털에 공개된 3개 채널의 편성표는 온통 재방송 표기가 빼곡하다. 뉴스도 시간이 줄었다. 심지어 광고마저 내보내지 못할 지경이라고 한다. 겨우 하루 만에 두 방송사가 겪은 곤란과 혼란 상황이 이 정도다. 그나마 제작된 분량이 아직 남은 경우나 외주제작의 드라마는 계속 방송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상황.

예전 같으면 ‘시청자 불편’을 앞세운 노조 비판 기사가 나올 법도 한데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보수언론들마저도 이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는 분위기다. ‘10명을 해고하고, 71명을 부당 징계하고, 187명을 부당전보’한 지난 5년의 언론탄압이라는 팩트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자유한국당만 엉뚱하게 반어법도 아닌 언론정상화를 주장하며 공영방송 파업을 반대하고 있다. 스스로 왕따를 자초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MBC 노조원들이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서 MBC의 애칭인 '마봉춘'이 들어간 현수막을 걸고 김장겸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국회보이콧을 주도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MBC 김장겸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가 곧바로 팩트 저격을 당하고 망신을 샀는데, 다음날 이에 대해 따져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인 모습은 차라리 측은할 정도였다. 이후 입장을 내놓았는데, 이 역시도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홍 대표는 2008년 KBS 정연주 사장의 경우와 2017년 MBC 김장겸 사장은 “체포의 적정성과 긴급성, 중대성”에 있어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한 “2008년 KBS 정연주 사장 건은 감사원 감사 결과 1800억 원 배임사건으로 검찰에 고발된 사건이고 김장겸 사장건은 특사경인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인지조사한 노동법위반 사건”이라서 “사건 내용의 중대성·적정성을 비교난망한 사건”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회외 순방 때는 장외투쟁을 중단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명은 했지만 납득할 요소는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이런 주장을 정연주 사장에 대한 재판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몰라도 1심부터 3심까지 전부 무죄를 받은 사건에 대해서 위법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무엇보다도 틈나면 노조에 대해 적개심을 드러낸 홍 대표답게, 부당노동행위를 체포영장이 발부될 수 없는 가벼운 사안으로 치부하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기득권 정당의 대표다운 반노동 시각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말도 확인됐다. 홍준표 대표는 5일 의원총회에서 “지지율 걱정도 있지만 우리는 밑바닥에 와 있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고 했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말이다. 정치권은 고사하고 국민 여론도 개의치 않겠다는 막가파식 발언인 것이다. 심지어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한 의원 하나 없다는 사실도 절망적이긴 매한가지다.

지난 박근혜 정권은 모든 면에서 최악이었다. 그것을 뒤늦게 증명하는 것은 그때 집권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이 야당이 된 후에 하는 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명분도 없이 정기국회를 보이콧함으로써 파행시킨 것이 가장 큰 증거다. 심지어 보수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안보위기 상황도 외면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4일 오전 국회 본청 계단에서 MBC사장 체포영장 발부 등에 항의하며 국회 보이콧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 언론 심지어 같은 야당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하는 국회 보이콧을 한다면 셀프 왕따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하지 않던 투쟁이라 그런지 대정부 투쟁도 영 시원찮다고 혀를 차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4일 로텐더홀에 시위하러 나온 자유한국당의 대형 피켓에는 MBC를 MBS로 썼다. 누굴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고 나온 거냐는 비웃음을 들어야 했다. 게다가 김장겸 사장이 고용노동부에 자진해서 조사를 받자 오히려 자유한국당 입장만 애매해졌다. 소위 출구전략도 막혀버린 것이다.

그런 사정에도 “앉아서 죽느니 서서 죽겠다”며 결기를 보이는 자유한국당에 “잘 가세요. 호상일 듯싶네요”라고 맞받아친 기사댓글이 통렬하다. 더 떨어질 곳이 없다고 포기한 민심일지라도 이 정도면 좀 살피는 편이 좋다. 요즘 유권자들은 기억력이 매우 좋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